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魯齋 許衡(1209~1281)의 생애와 철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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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李遠碩

Issue Date
2006-12
Publisher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Citation
奎章閣, Vol.29, pp. 219-240
Abstract
南冥 曺植(1501~1572)은 25세 무렵 허형의 글을 읽고 깨달음을 얻어 주자학으로 사상적전환을 하게 된다. 또한 남명의 사상적 선배라고 할 만한 김굉필 등은『小學』을 매우 중시한다. 중국철학사상『小學』을 실제 국가교육기관의 커리큘럼으로 채택하여 그 이념에 따라교육했던 이는 아마도 허형이 최초일 것이다. 한편 조선 중기 조선의 유학자들은 허형이 원나라 정부를 위해 일했던 것이 과연 정당했냐 여부를 놓고 논쟁을 벌인다. 그보다 훨씬 이른 고려 시대에는 고려 유학자들이 원나라로 유학을 가서 허형이 설립했던 국학에 입학을 하여 교육을 받았다. 따라서 허형의 철학사상을 규명할 경우 우리의 조선유학사 이해는 더욱 깊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렇듯 우리의 전통철학을 위해서는 연구되어야 할 중요인물이건만 우리나라 학계는 물

론, 중국 학계에서도 노재 허형 뿐 아니라 원대 유학사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연구를 하지

않았다. 각 철학사를 보면 송대와 명대 부분은 자세한 반면 원대는 그 사이에 매우 작은 분

량으로 서술되어 있을 뿐이다. 이는 원대 철학은 송대 철학보다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단지 송대 철학을 이해하기에 급급했던 이들의 철학이라는 편견이 깔려있지 않은지

의심케 한다. 그러나 철학사상이 시대의 산물이라는 고전적 명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원

대 철학이라는 토양이 없었다면 명대의 새로운 철학사상이 배태되었을 리 만무하다. 송대

와 명대를 잇는가교역할로서의 원대 철학이 갖는 의미도 중요하겠지만,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원대에 주자학이 관학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남송 말기에서부터 주희의 주석

서가 과거시험 교재로 채택되긴 했지만 국가교육기관에서 정식 커리큘럼으로 채택되고 또

교육기관의 교육이념이 주자학이 되었던 것은 원나라가 최초이다.
ISSN
1975-6283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64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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