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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强占期 京城帝國大學의 奎章閣 관리와 所藏 資料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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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金泰雄
Issue Date
2008-12
Publisher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Citation
奎章閣, Vol.33, pp. 161-181
Abstract
일제는 1910년 8월 대한제국을 강점한 뒤 漸進的 同化主義를 내세워 이른바 舊慣制度調査事業을 본격화하였다. 그리고 이를 문헌상에서 뒷받침하기 위해 규장각 도서정리작업에 착수하였다. 이후 추진 기관의 잦은 변경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작업은 지속적으로 추진되었으며 1910년대 후반에 이르면 미흡하나마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일제가 수립한 식민지배정책의 궁극적인 목표가 內鮮融和와 內鮮一體를 구실로 한민족의 말살에 있었으므로 이러한 조사사업의 일종이라 할 규장각 도서정리작업은 일제의 식민지 문화정책과 연계하여 새로운 단계로 진입해야 했다. 특히 3ㆍ1 운동이 일어나고 이어서 조선인들의 민족운동이 활발해짐으로써 일제는 문화의식 방면에서 적극적인 학술문화정책을 강구해야 했다. 즉 종전까지는 조선 문화를 탄압하거나 배제하는 전략을 고수했다면 이제는 조선문화를 일제의 통치 의도에 맞추어 정리하는 방침으로 전환해야 했다.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의 설치는 일제의 이러한 방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조치였다. 이 중 법문학부의 조선연구 방향은 조선 고유의 독자적인 문화를 해명하기보다는 동양 문화 연구를 전제로 하여 中國ㆍ滿蒙 및 日本에 부수되는 조선 문화의 地政學的 關係를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이는 조선 문화를 단지 대륙 문화와 일본 문화에 부속된 문화로 치부함을 의미하였다.

따라서 1928년부터 1930년에 걸쳐 학무국 학무과 분실에서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으로 이관된 규장각 자료는 일제의 이러한 학술문화정책과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교수의 연구 방향에 부응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어디까지나 일본인 관학자들의 연구 방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졌을 뿐이다. 이 중 법문학부가 진력하였던 奎章閣叢書의 간행과 『朝鮮王朝實錄』의 영인은 주로 동양 문화 연구 또는 일본 문화연구와 관련되어 시도되었다는 점에서 식민지 학술연구과정의 대표적인 산물이라 하겠다. 나아가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의 조선=동양 연구는 이러한 학술 문화 기반 위에서 관련 전공자의 연구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규장각 자료가 근대적 도서관의 형태를 갖춘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으로 이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인 연구자들에게는 열람의 기회가 오히려 제한되었을뿐더러 심지어 규장각 자료가 신간 도서에 밀려 이른바 소사실에 방치되기도 하였다. 이는 조선 문화를 대륙 문화와 일본 문화에 부속적인 존재로 파악하는 가운데 규장각 자료를 이등국민의 문화잔재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ISSN
1975-6283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64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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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규장각한국학연구원)규장각규장각 (奎章閣) vol.3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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