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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1887∼1894) 주일 조선공사의 파견과 외교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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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한철호

Issue Date
2001-06
Publisher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Citation
한국문화, Vol.27, pp. 285-324
Abstract
1887년 조선은 주일공사관을 개설함으로써 조·일 양국간위 실질적인 국교 정상화를 이룩하였다. 이는 근대적 외교 제도에 입각한 최초의 常駐公使館으로서 조선의 독립을 대내외에 과시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크다. 또한 주일 조선공사들은 일본에 장기간 주재하면서 외교 현안을 처리하고 일본의 근대화 실상 및 국제동향을 체계적으로 파익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필자는 주일공사의 파견 배경과 경위 및 목적, 주일공사관원들의 인적 구성과 그 특징. 주일공사의 외교 활동을 정리·분석함으로써 개화기 한일관계사와 정치개혁운동사의 전개과정 및 그 성격을 새롭게 규명하였다.

처음 주일공사로 발탁된 이헌영과 주일공사관 물색 명분 아래 선발된 이원긍의 파견은 反淸 자주외교를 펼치기보다 일본 망명 중인 김옥균 등의 인도를 추진하려는 데, 초대 주일공사 민영준의 파견은 미국과 유렵주재 전권공사를 파견하기 위한 '先派後咨의 전례로 삼는 데 각각 그 목적이 있었다. 주일공사는 치외법권조항으로 개정 촉구 등 양국간의 현안 처리, 근대식 기계·무기 및 서적 구입 등 근대적 제도와 문물 수용, 조오조약의 체결, 국내외 외교관들의 접대, 조선 관련 정보의 수집 등의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주일공사관은 대부분의 시기에 서리공사가 주재하였고, 서기관과 번역관도 정원을 채우지 못한 기간이 많았기 때문에 주일공사관은 파행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주일공사관은 양국간의 산적한 현안을 해결함과 동시에 일본 및 국제 정세를 정확하게 파악·대처해야 하는 본연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었다.
ISSN
1226-8356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66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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