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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 의례 정비와 『春官通考』 편찬
A Study on the organization of ceremonies and the Compilation of Chungwantonggo in the Era of King Jeong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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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송지원
Issue Date
2011-06
Publisher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Citation
규장각, Vol.38, pp. 97-151
Keywords
정조의례국가전례『春官通考』今儀의례화King Jeongjonational ritesChungwantonggo 春官通考Geumui 今儀
Abstract
조선시대 國家典禮는 국가의 최고 정치적 수장으로서의 국왕이 주체가 되어 행한다. 이때 행례의 범위는 국가 운영과 관련된 예 전반을 아우른다. 국가전례 시행 주체로서의 국왕의 위상은 매우 특별한데, 이는 그가 천명을 받아 나라를 이끌고 토지, 인민을 다스리는 존재이며 절대 至尊이라는 점과, 조선 사회의 예제, 명령, 국가정책의 최종 결재권자라는 위상과 관계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전례 시행의 주체는 곧 국가이기도 하다. 조선왕실에서 행해진 국가전례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정조대의 국가전례서 『춘관통고』는 조선에서 행해진 주요 국가전례의 특징과 그 역사적 맥락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전적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춘관통고』에 기록된 다양한 의례들 자체가 정조대의 의례는 물론 조선에서 행해졌던 주요 국가전례의 전모를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춘관통고』에 ‘今儀’로 기록되어 있는 여러 의례들은 정조대에 처음으로 시행된 의례이거나 영조대의 『국조속오례의』 이후에 시행된 의례, 혹은 조선 전기부터 시행되었지만 儀註가 마련되지 않아 정조대에 그 의주의 틀을 마련한 세 가지 경우에 해당한다. 이는 좁게는 하나의 중요한 사건, 혹은 행사가 이루어질 때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정조의 태도와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으며 그와 같은 사실은 나아가 정조대 문헌의 특징을 이루게 된다. 정조는 조선왕실에서 일어난 주요 행사들 대부분을 의례화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예컨대 의례가 시행되었음에도 그것이 전례서에 기록되지 않았던 의례도 모두 기록하였기 때문에 조선의 주요 국가례들이 국가전례서에 낱낱이 기록되었고 그러한 추이를 『춘관통고』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정조의 이와 같은 태도에 대하여는 조선중화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선도 있으나 그 이면에는 장악되지 않는 국가를 완전히 장악해야 한다는 일종의 압박 속에서 나온 정조의 초조함이 간간이 엿보이기도 한다. 모든 의례(행사, 사건)를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국정 운영의 움직임을 낱낱이 확보하고자 하는 태도의 일단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춘관통고』는 조선이 ‘기록 강국’이라는 평가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문헌임에 분명하다. 다만 그것에 편찬에 그치고 刊行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점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지만 다양한 컨텐츠를 확보하면서 시행된 국가전례의 전모를 공시적으로, 통시적으로 상세히 알 수 있도록 기록해 놓는 『춘관통고』의 기록 방식은 정조대 문헌이 그 어느 시기에 비해 한 발 앞서 나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Reading Chungwantonggo 春官通考 complied in the era of King Jeongjo of the Joseon dynasty helps understand characteristics of key ceremonies of the royal family of Joseon dynasty and historical context at once, since various royal ceremonies written in Chungwantonggo give the entire picture of key ceremonies of the royal family throughout the Joseon dynasty as well as during the rule of King Jeongjo.

Ceremonies written in Chungwantonggo as Geumui 今儀 are divided into three categories; those which were performed during this rule for the first time, those which were put in place since Gukjosogolaeui 國朝續五禮儀 of the King Yeongjo era, and those which had been performed from the early Joseon era without Euiju 儀註 and for which King Jeongjo laid foundation of Euiju. This relates to the fact that King Jeongjo tended to make records of an important occasion or event whenever it happened. King Jeongjo formalized and recorded most of Joseon’s royal occasions. For example, he ordered the recording of all the ceremonies which used not to be written before, so Chungwantonggo shows how those royal ceremonies were written in a national ceremonial book in detail.

Although some see his attitude like this from a perspective of the Joseon-centrism 朝鮮中華主義, we can say it hints at his pressure and hitters to take full control of the country at the same, because it seems that he wanted to record all the details of the administration relative to the royal ceremonies by making records of all the ceremonies (events and occasions).

In short, Chungwantonggo is clearly seen as literature proving how Joseon deserves the assessment as ‘a recording power.’ Unfortunately, the work was complied and not published, but it contains various contents, and the way it was written well describes all the details of the royal ceremonies synchronically and diachronically, which is very significant in that the literature in the era of King Jeongjo is more advanced than any era.
ISSN
1975-6283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75829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규장각한국학연구원)규장각규장각 (奎章閣) vol.38/3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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