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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저산책] 알베르토 플로레스 갈린도의 『잉카 왕을 찾아서: 안데스의 정체성과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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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우석균-
dc.date.accessioned2012-06-22T01:10:15Z-
dc.date.available2012-06-22T01:10:15Z-
dc.date.issued2011-12-
dc.identifier.citationTranslatin, Vol.18, pp. 67-78-
dc.identifier.urihttps://hdl.handle.net/10371/77293-
dc.description.abstract마르크스는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고 말했다. 한 번은 비극으로, 그리고 또 한 번은 희극으로. 잉카 제국의 고도 쿠스코 중앙광장에서 24년의 간극을 두고 집행된 두 건의 공개처형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1781년 5월 18일 쿠스코 중앙광장에서는 투팍 아마루 2세가 처형되었다. 원래 이름이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칸키인 그는 식민체제에 저항하여 1780년 봉기를 일으켜 원주민 국가 건설까지 천명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을 투팍 아마루 2세로 칭하였다. 투팍 아마루는 원래 잉카왕조 복원을 위해 빌카밤바를 중심지로 저항하다가 1572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잉카의 마지막 군주의 이름이다. 그리고 콘도르칸키는 비록 메스티소이지만 잉카 왕실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투팍 아마루 2세라는 이름을 택한 것이다. 투팍 아마루 2세의 처형은 희대의 스펙터클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운집하여 그 광경을 구경했고, 사형집행자들은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치밀한 연출로 화답했다. 먼저 투팍 아마루 2세의 아들의 혀를 무참하게 뽑아버렸고, 그 다음에는 그의 아내의 목을 여러 개의 밧줄로 동시에 조이면서 죽을 때까지 배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그 다음에는 투팍 아마루 2세의 팔다리를 네 마리 말에 한 짝씩 묶어 놓고, 말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달리도록 채찍질을 가했다. 투팍 아마루 2세를 네 토막으로 찢어 죽이려고 한 것이다. 결국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 능지처참으로 끝을 맺었지만, 허공에 떠올라 파르르 떨리던 콘도르칸키의 육신은 정복시대의 대표적인 비극적 순간으로 길이길이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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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language.isoko-
dc.publisher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SNUILAS)-
dc.title[명저산책] 알베르토 플로레스 갈린도의 『잉카 왕을 찾아서: 안데스의 정체성과 유토피아』-
dc.typeSNU Journal-
dc.citation.journaltitleTranslatin-
dc.citation.endpage78-
dc.citation.pages67-78-
dc.citation.startpage67-
dc.citation.volume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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