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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의 보두교와 정치 ― 아리스티드를 중심으로
DC Field | Value | Langu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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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 | 심재중 | - |
dc.date.accessioned | 2012-06-22T01:11:08Z | - |
dc.date.available | 2012-06-22T01:11:08Z | - |
dc.date.issued | 2011-09 | - |
dc.identifier.citation | Translatin, Vol.17, pp. 47-58 | - |
dc.identifier.issn | 2093-1077 (online) | - |
dc.identifier.uri | https://hdl.handle.net/10371/77311 | - |
dc.description.abstract | 아이티 독립 200주년이 되는 해인 2004년 2월 28일에 아이티의 대통
령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는 대통령직에서 쫓겨나 해외 망명길에 올랐 다. 그 직전까지도 수도 포르 토 프랭스의 거리에는 예수, 투생 루베르튀 르, 아리스티드: 아이티 민중의 절대 신앙이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들 이 나부꼈다. 플래카드 문구의 제일 앞에 나오는 예수의 존재가 말해 주 듯이, 오래 전부터 아이티의 정치 역학은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 다. 특히 아리스티드는 해방 신학 계열의 가톨릭교회 신부 출신 대통령이 었다. 그렇지만 아리스티드는 2003년에 토착 민중 신앙인 보두교(속칭 부 두교)를 아이티의 공식 종교로 인정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또한 아이티 독립의 영웅인 투생 루베르튀르(Toussaint L'Ouverture)는 민중의 상상 력 속에서 보두 신앙의 최고 정령인 파파 레그바(Papa Legba)와 동일시 되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이렇듯 아이티의 현 실 속에서 종교와 정치는 참으로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역학 관계 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위 콜럼버스의 발견에서부터 시작된 그 관계의 긴 여정을 간략하게나마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 - |
dc.language.iso | ko | - |
dc.publisher |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SNUILAS) | - |
dc.subject | 아이티 | - |
dc.subject | 보두교 | - |
dc.subject | 아리스티드 | - |
dc.title | 아이티의 보두교와 정치 ― 아리스티드를 중심으로 | - |
dc.type | SNU Journal | - |
dc.citation.journaltitle | Translatin | - |
dc.citation.endpage | 58 | - |
dc.citation.pages | 47-58 | - |
dc.citation.startpage | 47 | - |
dc.citation.volume | 1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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