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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왈파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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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강성식

Issue Date
2012-03
Publisher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SNUILAS)
Citation
Translatin, Vol.19, pp. 31-48
Abstract
잉카 마지막 군주 아타왈파의 생포와 죽음은 잉카 문명, 나아가 안데스 문명이 몰락하고 혹독한 식민지배가 시작된 역사적ㆍ상징적 사건이다. 그래서 수많은

신화, 전설, 민담의 소재가 되고 빈번하게 극화되기까지 했다. 이 텍스트 역시 연극 대본에서 추출한 것이다. 볼리비아의 헤수스 라라(1898~1980)가 재구성한

대본이다. 그는 페루의 아르게다스처럼 원주민들 사이에서 성장한 원주민주의자이며 문인으로 또 케추아 언어와 문학 연구가로 일세를 풍미했다. 헤수스 라라는 동포 소설가 마리오 운수에타(Mario Unzueta)의 소설 ??계곡??(Valle, 1945)의 연극 묘사를 읽고 아타왈파의 죽음을 다루는 수많은 연극들의 대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를 추적하다가 1952~1955년 사이에 세 개의 케추아어 텍스트를 입수하여, 비교연구 끝에 『비극 아타왈파의 최후』를 1957년 간행했다. 잉카 시대에 연극이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견이 있다. 또한 오늘날의 관념에서 생각하는 연극이 존재했다 하더라도 『비극 아타

왈파의 최후』가 오염이 되지 않은 순수한 작품일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하지만 원주민들이 아타왈파의 죽음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데는 상당히 유용하다. 비극이라는 명칭은 헤수스 라라가 붙였다. 군주를 비롯한 위대한 인물을 다루는 연극 전통이 잉카 시대에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리스 비극을 연상시키는 명칭을 전략적으로 붙인 것이다. 『비극 아타왈파의 최후』가 스페인 국왕이 피사로를 처형하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는 점이 이채를 띤다. 스페인인들은 정복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정복을 기독교와 이교도의 필연적인 싸움으로, 나아가 선/악의 투쟁으로 간주했다. 그런데 원주민들은 아타왈파를 선한 인물로, 피사로를 같은 기독교도들에게도 응징당하는 악의 화신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77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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