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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들 노래: 진도의 무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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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Howard, Keith
Issue Date
2000
Publisher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Citation
비교문화연구, Vol.6 No.2, pp. 269-280
Abstract
한국에서는 전통이 상당히 많이 사라졌다. 일제 식민지 시대와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든 한국 전쟁을 거쳐오면서 이른바 현대화라는 것이 전통 예술과 기술의 급속한 쇠퇴로 이어졌다. 오늘날 몇 가지 전통적인 종목들은 정부가 지원하는 무형 문화재(Intangible Cultural Asset)는 처음에 학자들로부터 나왔는데, 특별히 예용해씨가 1959년부터 1963년 사이에 발표한 기획취재 기사들과 1963년에 펴낸 라는 책이 그것이다. 보존하는 제도는 1962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961번째 법인 문화재 보호법 (Cultural Asset Preservation Law)의 통과로부터 시작됐다. 이 제도는 문화재 관리국(Office for Cultural Asset Management)에 의해 장려되고 유지되고 감독됐다. 학자들이 문화재 위원회(Cultural Asset Committee)에 제출하는 보고서를 준비 했고, 1964년부터 1985년까지 165권의 중요 무형 문화재 조사보고서(Cultural Research Reports on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Assets: 1964-1985)를 발간했다. 6개월 단위의 진척 보고서와 지역개론서도 첨부됐다. 재정지원은 1963년부터 문화재 관리 특별회계법(Special Accounting Law for Cultural Asset Management)에 의해 지원됐다. 보고서를 바탕으로 문화부장관의 추천을 받아 뛰어난 기능과 예능 보유자들이 “보유자"(예용해씨에 따르면 보통 흔히 ‘인간 문화재’, Human Cultural Assets)로 지정됐다. 인간문화재는 보통 사람들의 원급의 50% 를 지원받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문화재 관리국의 지원을 받아 몇몇 그룹과 단체들이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지방의 재원도 지방 문화센터라든가 지방의 기능보유자들, 행사 등에 지원됐다. 그렇지만 무형문화재 제도가 성공한 가장 큰 공은 역시 예능과 기능인들 자신의 열성적인 활동에 돌아가야 할 것이다.
ISSN
1226-0568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79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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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Social Sciences (사회과학대학)Institute of Cultural Studies(비교문화연구소)비교문화연구비교문화연구 vol.06 no.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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