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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과 한반도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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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김호징-
dc.date.accessioned2013-01-08T08:51:20Z-
dc.date.available2013-01-08T08:51:20Z-
dc.date.issued2008-
dc.identifier.citation서울대학교 명예교수회보, Vol.4, pp. 101-116-
dc.identifier.issn2005-0526-
dc.identifier.urihttps://hdl.handle.net/10371/80008-
dc.description.abstract1938년 9월 29일 독일의 Munich에서 당사자인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표가 참석하지 않는 자리에서, 독일의 총통 Hitler, 이탈리아의 수상 Mussoulini, 영국의 수상 Chamberlain, 프랑스의 수상 Daladier은 (독일인이 많이 살고 있기는 하나 엄연한) 체코슬로바키아 영토의 일부인 Sudetenland를 독일에 병합시키되 그 대신 Hitler는 유럽에서 앞으로 더 이상의 영토는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약속을 하였다. 힘없는 체코슬로바키아는 이를 받아 드릴 수밖에 없었다. 이를 통칭 뮤니히 협약(Munich Agreement)이라고 한다. 그리고 Chamberlain은 Hitler와 앞으로 영국과 독일 사이의 이견(異見)은 평화적 수단으로 해결하자라는 다짐을 서면으로 하였다. Chamberlain은 런던의 공항에 귀환해서 이 서면을 번쩍 들고 친구들이여, 우리 역사상 두 번째로 영국 수상이 명예스러운 평화를 가지고 독일에서 돌아왔다. 나는 이제 평화가 올 것으로 확신한다.라고 말함으로써 비행장에 마중 나온 영국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그런데 약 6개월 후인 1939년 3월 Chamberlain과의 약속을 깨고 Hitler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나머지 부분 즉 나라 전역(全域)을 점령하여 버렸다. 결국 Hitler는 영국과 프랑스를 기만한 셈이다. 그리하여 이 사실은 독재자에게 유화(宥和)정책은 금물(禁物)이다.라는 원칙의 논거(論據)로서 자주 인용되었다.-
dc.language.isoko-
dc.publisher서울대학교 명예교수협의회(Association of Emeritus Professors)-
dc.title노벨평화상과 한반도의 평화-
dc.typeSNU Journal-
dc.citation.journaltitle서울대학교 명예교수회보(Annual report of professors emeriti Seoul National University)-
dc.citation.endpage116-
dc.citation.pages101-116-
dc.citation.startpage101-
dc.citation.volum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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