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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黃昏)에 듣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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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인영

Issue Date
2009
Publisher
서울대학교 명예교수협의회(Association of Emeritus Professors)
Citation
서울대학교 명예교수회보, Vol.5, pp. 154-157
Abstract
13세에 음악가가 됐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음악은 어째서 이토록 아름답고 멋진 것일까 하고 SP 레코드 앞에서 눈물 젖습니다. 음악 가운데 어느 것을 전문으로 할 것인가 하고 이것저것 고민해 보거나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지휘도, 작곡도, 피아노 등 어느 악기도 어려워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16세에 로망 로랑이나 악성전기(樂聖傳記) 등과 같은 책을 읽었더니 만년의 베토벤은 귀도 안 들리고 가난하고 고독했던 생애였으나, 강한 개성으로

살아 온 음악가라고 되어 있어, 가난하더라도 예술을 가지고 자유롭게 사는 음악가라는 직업을 동경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볼품 좋은 미래의 모습이 겹쳐 보이면서 몽상(夢想)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음악 중에서 가장 쉬워 보이는 노래라도 해 볼까 결심하고 소질도 상관없이 혼자서 성악가가 되기로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하려면 노래 이외에는 흉내라도 낼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윽고 유학 간 일본의 음악학교에서 베토벤의 제9번 교향곡이나 장엄(莊嚴) 미사곡의 합창을 하면서 감동한 나머지 눈물이 악보에 떨어졌습니다. 한국은 당시 동족상쟁의 남북전쟁 중에 있었던 것입니다. 꿈꾸어 왔고, 커다란 노력 없이도 될 줄 알았던 성악가가 된 것입니다 마는, 쉽다고 생각한 것이 시작부터의 잘못으로, 성악이 이렇게 어려우니 웃으며 입문하고 울며 떠나간다라는 얘기가 명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4년생 때 가을에 오디션을 통해서 후지와라 가극단(藤原歌劇團)에 들어가, 다음 봄에는 염원하던 오페라 무대에 서고, 신인으로 장래가 유망하다고 신문 등에 나왔습니다. 몇 개의 오페라에 출연하기도 하고, 그 재공연(再公演) 등과 무대 경험이나 수련을 수년 동안 쌓은 다음, 나는 한국의 서울로 귀국했습니다.
ISSN
2005-0526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8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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