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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惠、奎의 생애와 그의 국어학적 엽적에 대한 한 연구
権恵査の生涯とその園語撃的業績についての一研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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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李賢熙
Issue Date
2012-12
Publisher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Citation
규장각, Vol.41, pp. 87-156
Keywords
年譜論著目銑用的方面科撃的方面応用的方面古語朝鮮光文舎規則文化史的観点國梓的・民族史率的観点연보논저목록문화사적 관점국수적 · 민족사학적 관접
Abstract
이 글에서는 먼저 權흙、奎의 생애를 다시 살펴 그동안 잘못 記述되어 온 점들을 바로장

았다. 아울러 그의 연보와 논저목록을 새로 작성하여 權훌奎論이 다시 씌어질 수 있게 하였다.

權흉奎는 자기가 설정한 연구의 세 단계, 즉 ‘實用的方面’(말과 글을 정리하는 단계)에서 ‘科學的

方面’(순수언어학적 연구를 행하는 단계)을 거쳐 應用的方面’(古語를 연구하여 同系語와의 比較를 행하

는 단계)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단계의 연구를 위해 古語를 연

구하였다 그의 국어학적 연구의 목표를 한 마디로 압축하자연 ‘應用的· 文厭學的’ 國語學의 追究

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권덕규의 큰 장점은 많은 古文歡을 살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았다 當代에도 그러하거니와, 지금도 구해 보기 힘든 문헌을 그는 朝蘇t文會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많은 양의 독서가 그 뒤에 치밀한 연구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매우 이쉽다고

할 것이다 권덕규는 꼬집이 센 편이기는 하였지만, 과오라고 인정되면 추후에 수정을 행하였다

그는 觀、U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作字規則’을 찾기도 하고 한자음에서 ‘半E ’을 찾아 가며 규칙

을 추구하기도 하였다. 외국어의 통사냐 형용사가 한국어에 들어와서는 명사 노릇밖에 못하다가

제 本융훌 즉 통사나 형용사가 되려면 ‘하’라는 同化證을 얻어야 한다는 식의 일반화를 꾀하기도

하였다. 초기에는 어학연구의 방법론 · 태도를 분명히 하였으나, 중 · 후기에는 그러지 못하였다

연구경향도 문화사적 관점에서의 어학연구에서 국수적 · 민족사학적 관점에서의 어학연구로 이행되었다. 그러나 고유어 사용을 권장하기는 하였으내 品詞名을 고유어식으로 한다든지 하는 지내

친 작업은 꾀하지 않았다.
ISSN
1975-6283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82284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규장각한국학연구원)규장각규장각 (奎章閣) vol.40/4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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