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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轉關에는 『파우스트』와 같은 鐵鏡이없는가?
DC Field | Value | Langu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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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 | 池明烈 | - |
dc.date.accessioned | 2014-01-06T07:22:25Z | - |
dc.date.available | 2014-01-06T07:22:25Z | - |
dc.date.issued | 1993 | - |
dc.identifier.citation | 독일학연구, Vol.2, pp. 66-84 | - |
dc.identifier.issn | 1229-7135 | - |
dc.identifier.uri | https://hdl.handle.net/10371/85300 | - |
dc.description.abstract | 오늘날 한 개인이나 한 민족은 과학 기술에 의해서 놀라운 자기 확장을 성취하고 있으며. 종래의 관념으로는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자기능력 한계를 초월하고 있다. 우리 한국인과 한국도 이러한 세계적 현상에 동참하고 있다. 과학기술에 의해서 인간은 동화의 세계를 실현하고 있다. 달의 동요는 이미 그 아름다운 상념을 상실해버렸다. 그래서 과학기술은 현대판 마귀(Teufel)라는 哲學的 解釋은 타당하다고 본다. 따라서 21세기의 파우스트는 철학자도, 음악가도 아닌 과학기술의 전문가
(Technologe)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테크놀로지〉의 마력을 이용하여 무한한 인식욕을 충족시켜 기적을 창출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다만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테크놀로지〉의 계발과 사용은 오로지 구현을 위해서만 이라야 한다. 이러한 고전적 이념을 간직하고 계도하는 것이 파우스트 독자의 慣務이며, 이점에 파우스트의 현대적 의미가 있다 하겠다. | - |
dc.language.iso | ko | - |
dc.publisher |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독일학연구소 | - |
dc.title | 왜 轉關에는 『파우스트』와 같은 鐵鏡이없는가? | - |
dc.type | SNU Journal | - |
dc.citation.journaltitle | 독일학연구 | - |
dc.citation.endpage | 84 | - |
dc.citation.pages | 66-84 | - |
dc.citation.startpage | 66 | - |
dc.citation.volume | 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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