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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案時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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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장희선
Issue Date
1996
Publisher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동양음악연구소
Citation
민족음악학, Vol.18, pp. 201-228
Abstract
기원전 12세기 말엽 주나라 무왕(武王)은, 상(商)왕조률 멸망시킴과 동시에 그 동안 유지되어왔던 노예제도률 폐지하고 또 은(股)왕조롤 통치했던 잔존세력마저 몰아낸 후 주나라를 세웠다. 이에 따라 광대한 영토는 모두 왕의 소유가 되었으니 이른바 “하늘 아래 모든 땅이 왕의 영토이고, 땅 끝까지 왕의 신하가 아닌 자가 없다 “하늘에 해가 둘이 아니듯이, 땅위에선 왕이 둘일 수 없다” 는 것이다.

그러므로, 天姿의 친족과 추종자 및 成王이 (은나라의) 約왕을 정벌할 때 혁명에 참가하거나 지지했던 각 종족의 추장들은 모두 작위와 영지를 받았기 때문에, 왕실을 옹호하고 주나라 천자의 명을 받드는 것은 그들의 의무였다. 주 왕조 당시의 농업생산량은 은나라(商族)에 비하여 현저히 증가했으며 농기구 또한 한층 발전 되었다. 새로운 계층이 지배하는 봉건제도는 바로 ‘토지사유제도’라는 새로운 경제적 기반 위에 성립되기 시작하였다. 봉건영주는 이전의 제도와 문물을 이어 받았으며, 아울러 봉건 제도와 상응하는 문화를 창조하였다. 음악방면에서 그들은 또한 이전의 樂曲,樂舞,樂器를 받아 들이고 다시 정리•개선하여 찬란하고 새로운 음악문화를 창조하였다. 이러한 문화는 봉건정권을 공고히 하는데 실제로 큰 도움을 주었으니, 당시에는 진보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86882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Music (음악대학)Asian Music Research Institute (동양음악연구소)Journal of the Asian Music Research Institute (동양음악) 민족음악학 Volume 18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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