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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n Staat - zwei Gesellschaften?: Überlegungen zum Problem der "inneren Einheit" nach der deutschen Vereinigung
한 국가, 두 개의 사회 -독일 통일 이후 대두된 내적 통일문제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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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Probst, Lothar; 정항균
Issue Date
2003
Publisher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독일학연구소
Citation
독일어문화권연구, Vol.12, pp. 138-157
Abstract
분단된 독일이 통일 된 후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줄곧 동독과 소독 사이의 기능 및 의사소통 교류 상의 문제점이 제기되어 왔다. 여기에서 무엇보다도 ‘내적 통일’ 이라는 개념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일련의 학자들은 독일이 정치적, 문화적 동질성의 의미에서 어떤 내적 통일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오히려 조화와 하나의 형태에 대한 잘못된 동경 대신 차이점을 민주주의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로 받아들일 것을 제안하였다. 이와는 반대로 다른 일련의 학자들은 독일인들의 머릿속에 아직도 장벽이 존재하고 있는 한, 독일 통일의 계획은 미완성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독일의 통일 이후 구 동서독 주민들은 서로 간에 점점 더 거리감을 느끼고 있으며, 정치적 문화적 이질감 역시 점점 커져 가고 있다.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제도나 체계들이 동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서독의 문화적 이질감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올까? 이에 대한 세 가지 설명 모델이 가능하다.

첫 번째 설명모텔은 구 동독인의 불만족 원인을 무엇보다도 통일 이후 사회경제적 발전에서 찾는 ‘전환테제’이다. 실제로 이미 1900년에 동독에서 산업 생산이 약 때% 가량 감소했고, 동독의 전 지역의 산업화가 해체되는 추세로 가고 있다. 또한 동독주민의 절반이 이미 실업을 경험해 본 상태이다. 이에 따라 동독의 인구는 점차 줄어들고 있고 많은 동독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서독지역으로 이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독일통일에 대한 동독인의 불만을 사회, 경제적 요소를 통해 설명하려는 시도는 어느 정도 타당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구 동독의 일부 지역에서 구조적으로 낡은 산업구조대신 새로운 현대적인 산업체와 직장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또한 서비스분야에서는 이전 동독과 비교하면 거의 혁명적이라고 부를만한 변화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많은 구 동독주민의 개별 생활수준도 높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이전과 비교해 많이 향상되었다. 그리하여 다른 유럽 중동부 인접 국가와 비교할 때, 구 동독지역의 시민들은 전반적으로 볼 때 서유럽의 생활수준에 상당수준 접근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볼 때 사회경제적 여건을 구 동독주민의 불만의 원인으로 보는 ‘전환테제’는 단지 부분적인 타당성만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두 번째 설명모텔로서의 ‘기형화테제(지속성테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테제에 따르면 통서독 주민 사이에는 여전히 정치적인 가치설정이나 규범의식 등에 있어서 차이가 존재하며, 특히 구 동독주민들은 이전의 권위주의적이고 반민주적인 정치적 시스템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구 동독주민들의 90%가 통일독일의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에는 동의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의 구체적 실천에 있어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구 동독주민들이 민주주의 정치모텔로부터 이탈하여 다른 정치적 움직임을 꾀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민주주의 원칙이 제도적으로 불충분하게 이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결국 ‘기형화 테제(지속성 테제)’가 부분적인 타당성 밖에 지니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준다.

이러한 두 설명모텔의 불충분성으로 인해, 문화학적 관점에서 두 지역 간의 이질성을 설명해보려는 세 번째 시도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러한 설명모델에서는 체계와 생활세계를 기본적으로 구분하되, 그것들을 도식적으로 분리하지는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기형화 테제’에서는 구동독주민들이 스스로를 몰락한 동독정부의 의심스러운 이념과 동일시하며 그것에 대한 향수에 젖는다는 구 서독주민들의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인 논거로 자리잡고 있었다. 실제로 많은 구 동독주민들은 국가조직으로서의 동독이 서독인들에게 독재국가로 비판받을 때 스스로가 공격받는 듯한 느낌을 가졌다. 이것은 국가적 제도와 조직 즉 체계에 대한 비판을 자기 자신의 전기적 삶, 즉 생활세계에 대한 비판과 혼동하는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동톡의 국가조직을 천적으로 억합적인 체계로서 이해하는 서쪽의 시각은 동쪽에서도 점점 뚜렷하게 나타나는 생활세계와 체계사이의 분리과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동독인들이 단순히 억압적이고 여론을 조작하는 동독정부에 의해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나 결속감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전체주의적인 동독사회 내에서도 비공식적인 인적교류, 예술분야에서의 어느 정도 자유로운 활동공간, 정치적인 자율성추구의 노력들이 꾸준히 있어 왔고 이것이 지배체제에 통합되지 않는 반대세력으로 기능해 왔던 것이다.

우리가 서독지역뿐만 아니라 동독지역에서도 복수적인 문화, 생활형식, 입장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동서독 지역간의 차이에 대해서도 이전과 다른 시각으로 명가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즉 동독 내에서의 차별성이나 서독 내에서의 차별성융 간과혜서는 안되며, 역으로 동서독 지역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공통된 문화적 형식이 존재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독일 통일과 함께 약속되었던 문화적 동화과정은 현재까지는 실패하였다고 볼 수 있다. 동서독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가 불안을 야기하는 신호들인지 아니면 일상성의 신호일 뿔이지 또한 ‘내적 통일’이 과연 필요한 것인 지의 문제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문제는 이러한 이질적인 ‘우리의 공동체’가 행위능력를 갖기 위한 어떤 포

괄적인 공통점올 보유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상호적인 연대감과 정치적인 집단의식은 한 공동체의 사회, 정치적 분열의 틈을 메울 수 있는 건국신화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건국신화는 우리라는 정체성올 부여하고 과거와 미래에 의미를 줄 수 있는 잠재력을 갖는다. 문제는 동독에서의 자유 시민 혁명이 서독인들의 정치적인 무시에 의해 성공적인 독일 민주주

의 역사의 건국신화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만일 그러했더라면, 구 동독주민들이 자부심을 갖고 통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조금은 쉬워졌을 것이다. (초록 작성: 정항균)
ISSN
1229-7135
Language
German
URI
http://hdl.handle.net/10371/87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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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Institute for German Studies (독일어문화권연구소)독일어문화권연구 (Zeitschrift für Deutschsprachige Kultur & Literaturen)독일어문화권연구 Volume 1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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