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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der und ästhetische KanonbHdung
젠더와 미적 규범 -독창성에 대한 열광과 평범성에 대한 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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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Onuki, Atsuko; 오순희
Issue Date
2003
Publisher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독일학연구소
Citation
독일어문화권연구, Vol.12, pp. 175-192
Abstract
프랑스 살롱문화의 영향하에 독일에서도 1800년경 살롱문화가 성립되었다. 이 문화의 특정은 1) 여성이 대화를 주도하고, 2) 구성원들의 관계가 느슨하며, 3) 정치 내지 사회적 테마들은 건드리지 않고, 4) 대개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유명한 예로 요한나 쇼펜하우어가 주도했던 살롱과 안나 아말리아 대공 모후가 주도했던 살롱을 들 수 있다. 그리

고 예나 낭만주의자들의 살롱은 낭만주의 문학운동의 구심점이기도 했다.

살롱이 번성하던 이 시기 베를린의 살롱문화는 유대 여성이 지적인 모임의 구심점을 이루고 있었다는 점에서 독특했다. 한나 아렌트가 지적하다시피 이 당시 유대여성은 이중적 의미의 국외자여야 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시민적 공중으로부터 배제되고 있었고 또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독일 사회로부터도 배제되고 있었던 것이다.

유대 여성의 살롱은 결국 시민사회의 외부 또는 주변부에 머물러야 했고 젠더의 변에서는 남성적 정체성에 의해서 인종 변에서는 독일 인종에 의해 제한되고 있었다. 독일남성과 유대여성간의 불균형한 관계로 이루어진 살롱이었지만 대화는 균형 있게 진행되었다. 출신도, 인종도, 젠더도 문제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외부’라는 공간적 비유는 크리스테바가 abjection이라고 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 다시 말하면 한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올 확립해갈때 바람직하지 않거나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들로 여겨지는 대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다시 “여성적 "이 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살롱, 특히 유대인들의 살롱은 “여성적”이라고 의미 부여된 언어

공간이었던 것이다.

18세기 계몽주의가 관철됨에 따라 살롱의 대화문화도 논증적으로, 또 이성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했다. 하버마스의 표현을 빌면 “보다 나은 근거를 대야 하는 강제 아닌 강제”가 생겨난 것이다. 여기에는 칸트의 이성개념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칸트의 비판철학은 사교문화에서 논리적인 공중의 문화로의 전환을 가져왔던 셈이다. 슐라이어마허도 사교는 도덕과 법칙을 근거로 삼올 것을 요구했다. 논쟁과 담론이 자유로운 대화보다 우선권을 지니게 된 것이다.

시민사회가 남성적으로 기호화됨에 따라 부정적인 것들은 ‘여성적인’특징들로 간주되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험담’이었다. 이처럼 여성적인 특질들은 실제와 무관하게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던 것이다. l800년대는 문자언어는 ‘남성적’인 것으로 목소리는 ‘여성적’인 것으로 파악하던 시대였으므로 살롱도 ‘여성적’이라고 간주되는 언어공간이라는 점에서 관찰할 수있다.

l800년경 베를린에서 유대 살롱을 여성이 이끌었던 것은 이 여성들이 상당한 수준의 교양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는데, 라헬의 경우도 그러하다. 보통의 살롱이 사적인 분위기에 의해 주도되었던 데 반해서 라헬은 자신의 살롱에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차이를 지양하고자 했다. 한나 아렌트는 라헬이 사교술이 부족했다고 하지만, 나는 그것을 사교술의 부족이 아니라, 통념적인 사교규범을 의식적으로 거부한 것이라고 본다. 라헬이 국외자로 머물렀던 것도 그녀의 출신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사회적 요구에 순응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라헬은 대화를 할 때 당시 사회관습에 어긋나는 형식을 의도적으로 사용했다. 이점에서 라헬

과 낭만주의자들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라헬과 낭만주의자들은 “위트”를 사용하는 점에서도 공통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라헬과 낭만주의자들이 동일한 언어를 구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라헬에게는 그것이 비난받을 이유가 되었고 낭만주의자들에게는 인습을 타파했다는 의미에서 독창적이라는 평가가 내려졌다는 사실이다. 라헬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미적 규범은 제도로서의 예술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지 결코 언어 자체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베티나 폰 아르님의 경우는 사회적으로 강요된 정체성올 유희적으로 전복시키려고 했던 예이다. 그녀는 작품에서 살롱의 언어를 자주 사용했는데, 철저히 전략적으로 연출된 것이었다. 이러한 연출의 특성은 혼히 ‘여성적’인 언어로 간주되는 특성들 - 수다스럽고, 비논리적이며, 근거를 대지 못한다든가 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베티나가 의도적으로 일상어를 사용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오라비인 클레벤스 브렌타노도 『마적』에서 보듯이 평균적인 민중의 언어를 선호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이나 오라비가 그러한 민중언어를 문학의 형식으로 미학화하고 애국주의의 기반으로 이용했던 반면, 베티나는 일상어를 여성들에게 강요된 제한들을 부수는데 사용했다. 여성성이라는 것이 베티나의 경우에는 연출된 퍼포먼스였고, 사회적인 젠더 구별을 분명하게 거부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라헬과 베티나는 그들의 언어를 미학화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올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하면 미학화된 언어를 씀으로써 시민 사회의 외부에 스스로를 국한시키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라헬은 삶과 예술의 분리를 원치 않았고 베티나는 비문학적이라고 거부되는 일상어를 사용했다. 이러한 태도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거부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적 규범이 형성되는 역사를 보면, 규범을 째는 행위는 독창성의 표현이라는 인정을 받는데, 이 독창성은 다시 하나의 규범으로 고정되고, 그러면 또다시 규범의 파괴가 뒤따른다. 이처럼 근대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규범과 반규범의 사슬은 궁극적으로 예술과 비예술의 이분법으로 귀결되었다. 이런 점에서 라헬과 베티나의 입장은 저 저주받은 이분법의 운동으로

부터 탈출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초록 작성: 오순회)
ISSN
1229-7135
Language
German
URI
http://hdl.handle.net/10371/87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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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Institute for German Studies (독일어문화권연구소)독일어문화권연구 (Zeitschrift für Deutschsprachige Kultur & Literaturen)독일어문화권연구 Volume 1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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