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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末·日帝下의 地主制 - 事例1 : 江華金氏家의 秋收記를 통해서 본 地主經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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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金容燮
Issue Date
1972
Publisher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아문화연구소
Citation
동아문화, Vol.11, pp. 3-86
Abstract
開港을 전후한 19세기의 韓國은 큰 激動期를 맞이하고 있었다. 開港 전에 있어서도 韓國社會는 封建的인 社會秩序가 解體되는 가운데, 새로운 社會의 形成을 展望하면서 社會 諸階層間의 갈등과 抗爭이 激化하고 있었지만, 開港 후에는 그러한 위에서 다시 資本主義 列強의 侵略을 받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까닭이었다. 韓國社會는 그가 本來 지니고 있었던 諸般 社會的 矛盾을 解決하지 못한채 巨大한 外勢와의 對決이 强要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러한 列强의 壓力即資本과 商品의 作用 그리고 植民地的收奪을 위한 諸政策은 우리 社會가 本來 지니고 있었던 內的 矛盾關係를 한층 더 激化시키면서 從來의 發展過程을 促進시키기도 하고 이를 沮止시키기도 하였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서는 韓國社會를 漸次 그들의 經濟的 支配下에 隸屬시키게 되었다.
ISSN
1598-0200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87533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Center for East Asian Studies (동아문화연구소)Journal of S.N.U. Institute for Asian Studies (동아문화)동아문화 Volume 11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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