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庸代黃驚의 亂에 대한 灌鎭의 態度 : 당대 황소의 난에 대한 번진의 태도-고병의 경우
DC Field | Value | Language |
---|---|---|
dc.contributor.author | 황청련 | - |
dc.contributor.author | 박근칠 | - |
dc.date.accessioned | 2014-01-13T06:48:00Z | - |
dc.date.available | 2014-01-13T06:48:00Z | - |
dc.date.issued | 1988-12 | - |
dc.identifier.citation | 동아문화, Vol.26, pp. 125-173 | - |
dc.identifier.issn | 1598-0200 | - |
dc.identifier.uri | https://hdl.handle.net/10371/87644 | - |
dc.description.abstract | 晚唐時期에 唐 政府는 정치, 사회, 경제 등의 측면에서 여러 곤란한 문제에 직면하였다. 僖宗의 재위기간(873~888)에 발생하였던 王仙芝·黃巢의 亂은 바로 이러한 각종 문제를 총합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875년초 황소가 반란을 일으키면서부터 884년 진압되기까지 10년간 계속되었던 전란이 唐帝國 자체에 주었던 타격은 사실상 심각하였다. 즉 王·黃의 반란은 晩唐의 政府가 정치, 사회, 경제 등의 측면에서 難題에 처하여 있었던 상황의 결과였으며 이러한 결과는 더욱이 점차 악화되어 唐帝國 멸망의 遠因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당제국 멸망의 原因을 규명하려면 정치적 구조나 사회문제, 경제적 상황 등의 여러 측면을 고려하여야 하는데 다만 이러한 문제들은 항시 상호 연관되어 있어서 한가지 측면에서만의 접근으로는 곤란하다. | - |
dc.language.iso | ko | - |
dc.publisher |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아문화연구소 | - |
dc.title | 庸代黃驚의 亂에 대한 灌鎭의 態度 | - |
dc.title.alternative | 당대 황소의 난에 대한 번진의 태도-고병의 경우 | - |
dc.title.alternative | The Attitudes of the Late T''ang Provincial Governors toward the Rebellion Led by Huang Ch''ao-A Case Study of Kao P''ien | - |
dc.type | SNU Journal | - |
dc.contributor.AlternativeAuthor | 黃淸連 | - |
dc.contributor.AlternativeAuthor | 朴根七 | - |
dc.citation.journaltitle | 동아문화 | - |
dc.citation.endpage | 173 | - |
dc.citation.pages | 125-173 | - |
dc.citation.startpage | 125 | - |
dc.citation.volume | 2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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