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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쇼 데모크라시기 내무관료의「농촌문제」인식 -야스지 에이지(安井英二)의 경우- : 大正ヂモクラシー期における內務官務の「農村問題」認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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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元智姸-
dc.date.accessioned2014-01-14T02:23:59Z-
dc.date.available2014-01-14T02:23:59Z-
dc.date.issued1999-
dc.identifier.citation동아문화, Vol.37, pp. 131-168-
dc.identifier.issn1598-0200-
dc.identifier.urihttps://hdl.handle.net/10371/87731-
dc.description.abstract본 논문의 분석대상인 야스이 에이지(安井英二)는 1890년 東京에서 출생하여 第一高等學校를 거쳐 東京帝國大學에서 독일법을 전공하고 1916년에 내무성에 취직하였다. 1919년 10월 警保局의 사무관이 되었으며 노동입법에 대한 제반 압력에 저항하여 사직한 미나미하라 시게루(南原繁)의 뒤를 이어 社會局에서 일련의 노동입법의 작성에 주도적으로 관여하였다. 야스다 히로시(安田治)는 야스이 에이지의 노동정책구상이야말로 치안경찰에 의한 단속중심의 행정단계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야스이의 노동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내무관료인 야스이에게 있어 노동쟁의는 기본적으로 통치의 시점에서 파악되었지만, 「노동쟁의란 필경 계급운동」일 수밖에 없으며, 그 의의를 인정하였다. 社會局시절의 야스이는 이미 노동조합이 정착하고, 쟁의도 노동조합을 배경으로 하는 등 노동조합이 노동자계급을 대표하기에 이르렀으니 노동정책은 노동조합정책이 중심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第1次世界大戰後の新たな日本資本主義の發展のもとで, 商品的農業が展開ソ, 勞働市場も擴大した. 都巿勞働巿場での賃金上昇に連動して農業部門の雇用拂用も上昇した. このような條件は小作爭議の發展を可能にした, このような變化を政府機構の中で最も敏感に感じられたのは, 對民事務を通じで民衆に接する機會が多い內務官僚であった. 1919年から內務省の社會局で勞働法案作成を任せられていた安井英二(1915年入省)は, 當時の政府內で最も先進的な方案を提出した. 1年間の海外硏修から戾った井安は, 1925年に地方局に行政課長として赴任し, 地方政策に取り組むにとになる. 安井が行政課長在任中に作成した〈農村自治管見〉を通じて, 當時の內務官僚がその狀況をどように受け止めたのかを分析した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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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language.isoko-
dc.publisher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아문화연구소-
dc.title다이쇼 데모크라시기 내무관료의「농촌문제」인식 -야스지 에이지(安井英二)의 경우--
dc.title.alternative大正ヂモクラシー期における內務官務の「農村問題」認識-
dc.typeSNU Journal-
dc.citation.journaltitle동아문화-
dc.citation.endpage168-
dc.citation.pages131-168-
dc.citation.startpage131-
dc.citation.volume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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