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杜審言詩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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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宋龍準
Issue Date
2006
Publisher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아문화연구소
Citation
동아문화, Vol.44, pp. 23-52
Abstract
杜審言은 후에 洛陽丞으로 갔다가 어떤 사건 때문에 吉州 司戶參軍으로 좌천되었다. 그는 吉州에서 동료와 불화하여 司馬 周季重과 司戶 郭若訥이 그를 무고하는 바람에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 때가 대략 儀鳳年間(678년 전후)이었는데, 당시 13세에 불과했던 그의 맏아들 杜幷이 周季重이 술에 취한 틈을 타서 칼로 찔러 죽였는데, 杜幷도 그 때 周季重 주위에 있던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周季重은 죽음에 임하여 “심언에게 효자가 있다는 것을 내가 몰랐다. 약눌이 고의로 나를 그르친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두심언은 이 일로 인해 관직에서 물러나 洛陽으로 돌아갔다. 두심언은 낙양으로 돌아간 후, 대략 武后 垂拱年間(688 전후)에 武則天이 그를 조정으로 불러들여 임용할 마음을 먹고 “그대는 기쁜가?”라고 물으니 두심언을 기뻐서 춤을 추며 은혜에 감사하는 한편 명을 받들어 를 한 수 썼다.
ISSN
1598-0200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87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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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Center for East Asian Studies (동아문화연구소)Journal of S.N.U. Institute for Asian Studies (동아문화)동아문화 Volume 4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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