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潁州·揚州 시기의 東坡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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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柳種睦

Issue Date
2006
Publisher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아문화연구소
Citation
동아문화, Vol.44, pp. 123-147
Abstract
龍圖閣學士知杭州軍州事 즉 杭州知州로서 元祐 4년(1089) 7월부터 1년 반 정도 杭州에 머문 蘇東坡(1036-1101, 본명 蘇軾)는 원우 6년(1091) 2월에 翰林學士承旨에 임명됨으로써 3월 초에 항주를 떠나 開封으로 들어갔다. 그는 浙西 지방의 농촌 실정을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하여 매우 수고스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둘러가는 길을 선택했다. 그는 나중에 이것이 그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는 사단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당시 조정은 劉摯(1030-1097)·劉安世·王巖叟등의 朔黨 인사들에게 좌지우지되고 있었고 이에 우두머리를 잃고 갈데가 없어진 朱光庭·賈易·楊畏 등 洛黨의 잔재들이 삭당에 빌붙어 개인적인 영달을 꾀하는 형국이었는데, 삭당의 영도자 유지의 힘을 빌어 侍御史가 된 가이가 사사건건 소동파를 모함하고 그에게 시비를 걸었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던 소동파는 옛날에 보수적이고 융통성 없는 程頤(1033-1107)의 주장에 대해 자주 비판을 했었는데 정이의 일당인 가이가 삭당의 힘을 믿고 옛날에 있었던 이 일에 대하여 보복을 하는 것이었다. 소동파는 더 이상 이런 추한 꽃을 보고 싶지 않아서 몇 차례나 외직을 자청하는 상소문을 올렸지만 유지등의 삭당인사들에게 전횡되고 있는 정국을 바로잡아야만 했던 太皇太后로서는 소동파의 청원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ISSN
1598-0200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87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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