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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說詩考
中文摘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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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宋龍準
Issue Date
2012
Publisher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아문화연구소
Citation
동아문화, Vol.50, pp. 335-359
Keywords
初唐詩盛唐詩張說開元詩風奉和應制詩抒情詩山水詩岳州
Abstract
張說(667-730)은 唐 則天武后·中宗·睿宗·玄宗의 4대를 거치면서 玄宗朝에서 재상을 지낸 정치가인 동시에 開元 前期 문단의 핵심인물로서, 唐詩가 初唐詩에서 벗어나 盛唐詩로 진입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武后 神龍(705-707)에서 玄宗 開元(713-741) 前期까지의 詩壇에서 주로 활약했던 그는 盛唐 문인들의 존경을 받는 문장가요 현인으로서 낮은 문벌과 지위에 있는 후진들을 발굴하고 風雅를 제창하여 開元 연간의 詩風을 주도하였다. 그는 初唐四傑의 글을 추앙하였지만 동시에 炯에게 “비록 韶夏의 풍격을 갖추었다고 해서 수레의 끌채를 두드리며 부르는 야인의 노래를 저버리지 말라”고 권고하여 그들이 지닌 전통적 관념의 편파성을 정확하게 바로잡았다. 張說은 일생을 功業으로 채우고자 하는 정신으로 창작하여 建安精神을 드날렸는데, 이는 盛唐 시인의 모범이 되었다.



張說(667-730)一生經歷了則天武后、中宗、玄宗三朝. 他是在玄宗朝當過宰相的政治家, 而且在開元前期文壇的核心人物. 他在詩歌藝術方面博採衆長, 從詩歌表現題材、詩歌形式, 到詩境、骨力等方面都作了積極、有效的探索, 爲開創盛唐詩歌新風貌作了比較全面的準備. 張說現存詩歌三百五十首, 其中的一半是奉和應制之作, 這樣的體制已限制了他的詩歌自由發揮、抒情寫性. 歌功頌德、詞藻富麗是其特點, 但從另外的角度看, 也可以使人了解到當時社會一些側面. 開元以後, 不少應制詩是爲配合當時政治大事而作, 這樣的變化還與張說利用這一詩體充分表明自己改革政治的主張, 特別是提唱禮樂文敎的思想有關. 與宮廷詩歌藝術發展緩慢適成鮮明對比, 開元前期張說在貶謫期間所寫抒情詩歌作品却表現出藝術上的變化. 這種藝術上的新變化彌補了宮廷詩歌在藝術形式、精神內容等方面的缺陷. 開元前期山水詩雖然再度恢復了齊梁詩風, 却並未重蹈其綺靡之覆轍. 原因當然很多, 其中張說的引導也是一個重要因素. 他的山水詩能兼謝靈運、謝脁兩種不同的風格, 促使晉宋與齊梁兩體趨于合流. 總之, 張說自己雖未打破盛唐詩境富于深廣槪括的關門, 但認識到這種變化的意義, 當大大有助于盛唐詩境的開拓.
ISSN
1598-0200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87804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Center for East Asian Studies (동아문화연구소)Journal of S.N.U. Institute for Asian Studies (동아문화)동아문화 Volume 5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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