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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égritude » et après.... : <네그리튀드>와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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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Tsunekawa, Kunio-
dc.date.accessioned2014-01-16T06:59:19Z-
dc.date.available2014-01-16T06:59:19Z-
dc.date.issued2010-
dc.identifier.citation불어문화권연구, Vol.20, pp. 223-251-
dc.identifier.issn1975-3284-
dc.identifier.urihttps://hdl.handle.net/10371/88898-
dc.description.abstract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명의 창시자인 에메 세제르 Aimé Césaire, 레오폴 세다르 셍고르 Léopold Sédar Senghor, 레옹 공트랑 다마스 Léon‐Gontran Damas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제르와 다마스는 마르티니크에서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으며 이후 파리에서도 우정을 유지했고, 그곳에서 셍고르를 만나 세 사람의 관계가 성립되었다. 특히 『에뛰디앙 누아르 Létudiant noir』지를 통해 네그리튀드 운동이 시작되었다고도 할수 있다. 그러나 이 세 인물 가운데, 다마스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데, 그 이유는 그가 90세 이상을 살았던 두 사람에 비해 66세의 나이에 일찍 사망한 때문이며, 미국에서 교수로 있으며 생을 마친 이력에서 찾을 수 있다. 다마스의 네그리튀드에 o한 관점은 셍고르보다는 세제르에 가까워 상당히 급진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일례로 그의 대표작품 『Pigments』 이나 『Retour de Guyane』는 그 내용이 국가의 존립에 영향을 줄 만큼 과격하다 하여 프랑스에서 금서가 되기도 했다. 다음으로 네그리튀드 운동의 큰 두가지 경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셍고르와 세제르의 관점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셍고르는 아프리카 문화의 본질이 지니는 위대성을 찾아내고자 하는 낙관주의자로, 세제르는 그것보다는 식민지 상황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투쟁을 주장하는 비관주의자로 간주된다. 이러한 경향은 동화assimilation 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dc.language.isofr-
dc.publisher서울대학교 불어문화권연구소-
dc.subject네그리튀드-
dc.subject이원구조-
dc.subject셍고르-
dc.subject세제르-
dc.subject아이티-
dc.subject디아스포-
dc.subjectà deux vitesses-
dc.subjectLéopold Sédar Senghor-
dc.subjectAimé Césaire-
dc.subjectHaïti, diaspora-
dc.title«Négritude » et après....-
dc.title.alternative와 그 후-
dc.typeSNU Journal-
dc.contributor.AlternativeAuthor츠네가와, 쿠니오-
dc.citation.journaltitle불어문화권연구 (Revue d`Etudes Francophones)-
dc.citation.endpage251-
dc.citation.pages223-251-
dc.citation.startpage223-
dc.citation.volume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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