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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의 南韓政局 -序論에 대신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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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金弘宇-
dc.date.accessioned2014-01-21T06:55:01Z-
dc.date.available2014-01-21T06:55:01Z-
dc.date.issued1990-
dc.identifier.citation한국정치연구, Vol.2, pp. 9-31-
dc.identifier.issn1738-7477-
dc.identifier.urihttps://hdl.handle.net/10371/89899-
dc.description.abstract1945년 8월 15일 정오에 일본국왕 히로히또(裕仁)는 美國·英國·中國·蘇聯 등 연합국의 「포츠담」 共同宣言을 수락하는 「降伏詔書」를 방송하였다. 이 방송에서 히로히또는 前日에 美英兩國에 宣戰한 所以가 帝國의 自存과 東亞의 安定을 庶幾함에 不過하고 他國의 主權을 排하고 領士를 犯함은 勿論 朕의 뜻이 아니었다고 변명한다. 이어서 그는
今後 帝國의 받을바 苦難은 勿論 尋常이 아닐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모름지기 擧國一致 子孫相傳하여 굳게 神國의 不滅을 信하고 任重道遠함을 念하여 總力을 將來의 建設에 傾하고 道義를 厚케하여 志操를 鞏하게 하여 盟誓코 國體의 精華를 發場하여 世界에 進運 뒤떨어지지 않을 것을 期하라. 爾臣辰은 朕의 意를 體하라.
여기서 한가지 지적할 점은 당시 일본정부는 포츠담 共同宣言을 무조건 항복이 아닌, 조건부 항복"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天皇制의 존속을 전제로 한 降伏으로 인식한 점이다. 이것은 1945년 8월 10일 「포츠담」 선언을 수락한 일본정부의 외교문서를 보면 알 수 있다. 즉,
帝國政府는 一九四三年 七月二十六日「포츠담」에서 米, 英, 支三國政府 首腦者에 依하여 發表된 後 蘇聯政府의 參加를 본 共同宣言言에 든 條件을[과?] 右宣言은 天皇의 國家統治의 大權을 變更하는 要求를 包含하여 있지 않은 了解下에 承諾함. ([] 안의 것은 필자의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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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language.isoko-
dc.publisher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dc.title1945년의 南韓政局 -序論에 대신하여--
dc.typeSNU Journal-
dc.citation.journaltitle한국정치연구(Journal of Korean Politics)-
dc.citation.endpage31-
dc.citation.pages9-31-
dc.citation.startpage9-
dc.citation.volum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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