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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泳孝의 建白書 ---內政改革에 대 한 1888年의 上疏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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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金甲千-
dc.date.accessioned2014-01-21T06:55:08Z-
dc.date.available2014-01-21T06:55:08Z-
dc.date.issued1990-
dc.identifier.citation한국정치연구, Vol.2, pp. 245-295-
dc.identifier.issn1738-7477-
dc.identifier.urihttps://hdl.handle.net/10371/89905-
dc.description.abstract일본에 머물고 있는 臣 박영효는 삼가 4번 절하며, 하늘의 용솟는 운명을 통합하시고 지극히 돈독한 인륜을 일으키시는 대군주 폐하께 상소를 올립니다.
엎드려 생각컨데,臣의 가문은 世臣의 후예로서, 臣의 代에 이르러 부자형제가 특별히 총애를 받았읍니다. 이런 까닭으로 臣의 父子는 폐하께서 내리신 은혜에 감격했고, 그것에 보답할 바를 알지 못했읍니다. 臣의 아비인 故 判書 臣 元陽은 항상 臣의 형제에게, 온 몸을 다하여 임금을 섬기고 마땅히 목숨을 다하여 충성을 바쳐서, 국가를 위한 보답의
길을 찾고 위험이나 어려움을 피하지 말아라.고 훈계하였읍니다. 그때 臣은 나이가 적고 배운 바가 적어,비록 그 말을 들었어도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다만 얼굴을 들고 응답했을 뿐입니다.
聖恩의 만분의 일이나마 마음에 두었으나, 일의 순조로움과 거슬림을 헤아리지 못하여, 갑신정변에 이르러 멋대로 경솔한 거사를 행하였지만 천운과 마음이 어긋나, 공적으로는 폐하의 진노를 사고 3국의 紛亂을 일으켰고, 사적으로는 헛되이 臣의 부모형제와 친구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고, 거사는 끝내 나라에 무익하고, 臣은 인정도 의리도 없는 무리와 같은 자로 인식되었습니다. 어찌하여 나아가 명을 받고 엎드려 벌을 받지 않았느냐 하면, 그 거사가 사실은 忠君愛國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지, 찬탈·반란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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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language.isoko-
dc.publisher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dc.title朴泳孝의 建白書 ---內政改革에 대 한 1888年의 上疏文---
dc.typeSNU Journal-
dc.citation.journaltitle한국정치연구(Journal of Korean Politics)-
dc.citation.endpage295-
dc.citation.pages245-295-
dc.citation.startpage245-
dc.citation.volum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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