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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초 독일의 지식인 운동 - 청년헤겔파의 사상적 궤적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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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鄭文吉
Issue Date
1997
Publisher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Citation
한국정치연구, Vol.7, pp. 139-169
Abstract
괴테는 19세기초의 독일의 지적 상황을 당대의 세계적 중심지인 파리와 비교하여 “황무지”라고 지칭한 바 있다. 파리가 “탁월한 재능을 가진 자들이 한곳에 모여 매일같이 사귀고, 논쟁하며, 경쟁하고, 또 서로가 서로를 가르쳐주고 이끌어 주는 곳”인데 비해, 이곳 독일에서는, [독일의 지식인들이] 얼마간의 지식을 얻기 위해서도 여간 고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은 결국 우리가 모두 고립하여 궁색한 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국민으로부터 미미한 교양밖에 얻을 수가 없으며, 거기에다 우리나라의 재능있는 사람, 지혜있는 사람들은 독일전역에 분산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비엔나에, 다른 어떤 사람은 베를린에,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쾨니히스베르크에, 그리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본이나 뒤셀도르프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 50마일이나 100마일 떨어져 있기에 그들이 개인적으로 접촉하거나 사상적으로 교유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따라서 괴테는 그가 사는 곳에 알렉산더 폰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가 들른다면, 그는 곧장 그를 찾아가 그 자신으로서는 몇 해가 걸려도 도달하지 못했을 지식을 하루만에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술회하고 있다.
ISSN
1738-7477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89964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Social Sciences (사회과학대학)Institute of Korean Political Studies (한국정치연구소)한국정치연구 (Journal of Korean Politics)한국정치연구 Volume 06/07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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