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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교수의 한국전쟁론에 관한 논쟁
DC Field | Value | Langu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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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 | 染佶炫 | - |
dc.date.accessioned | 2014-01-21T07:00:34Z | - |
dc.date.available | 2014-01-21T07:00:34Z | - |
dc.date.issued | 1999 | - |
dc.identifier.citation | 한국정치연구, Vol.8, pp. 109-128 | - |
dc.identifier.issn | 1738-7477 | - |
dc.identifier.uri | https://hdl.handle.net/10371/89974 | - |
dc.description.abstract | 1998년의 한국은 소위 IMF 관리체제로 통칭되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보다 확대·신장시켜 나간다는 과제가 소홀히 취급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볼 때 1987년 민주화 이후 10여년이 지나는 동안 정치적 민주주의가 보다 성숙되어 나가고 있음을 여기저기서 확인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1992년의 수직적 정권교체에 이어 1997년의 수평적 정권교체라 하겠다. 특히 1997년의 정권교체는 헌팅톤이 지적하는 바 민주화를 가져왔던 첫 번째의 선거에서 권력을 잡은 정당이나 정치집단이 다음 선거에서 패배하여 승자에게 정치권력을 넘겨주었다"(Huntington 1991, 266-267)는 의미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한단계 더 성숙되어 나가고 있음을 웅변으로 보여주었다. 『월간조선』 1998년 11월호에 최장집 교수의 충격적 한국전쟁관: 6.25는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이라는 제하의 시사평론이 게재되었다. 이 글을 통해서 제기된 소위 건국사관 논쟁은 당사자인 최장집교수의 반론과 조선일보사의 재반론으로 이어지면서 급기야는 시민사회단체간의 논쟁과 정치권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그 강도를 더해갔던 것이다. | - |
dc.language.iso | ko | - |
dc.publisher |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 - |
dc.title | 최장집교수의 한국전쟁론에 관한 논쟁 | - |
dc.type | SNU Journal | - |
dc.citation.journaltitle | 한국정치연구(Journal of Korean Politics) | - |
dc.citation.endpage | 128 | - |
dc.citation.pages | 109-128 | - |
dc.citation.startpage | 109 | - |
dc.citation.volume | 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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