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

근대정치의 형성에서 민주주의와 종교: 샤토브리앙과 토크빌
Democracy and Religion in the Formation of Modern Politics: Chateaubriand and Tocqueville

Cited 0 time in Web of 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Authors
홍태영
Issue Date
2005
Publisher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Citation
한국정치연구, Vol.14 No.1, pp. 251-276
Abstract
프랑스의 18세기가 비판의 세기였다면, 19세기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세기였다. 이것은 18세기와 혁명이 품고 있었던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을 구체적인 정치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서 실현시켜야 함을 의미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종교의 문제는 19세기 사고의 중심에 들어서게 된다. 생시몽의‘신기독교’, 콩트의‘인류교’, 드 메스트르와 보날의 중세적인 기독교로의 회귀, 등이 그러한 예들이다. 이와 대비되어 사회의 조직자로서 국가를 사고하는 예로서 기조를 볼 수도 있다. 근대에 등장한 민주주의를 수용하면서 종교의 문제를 사고한 예가 샤토브리앙과 토크빌이다. 우선 샤토브리앙에게 기독교는‘사회의 도덕’으로서 위치지워진다. ‘귀족주의
적 자유주의’체계 속에서 기독교는‘민주주의’를 순화시키는 귀족주의적 가치 ─ 공민적 의무(devoirs civiques) ─ 를 실현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혁명이 가져온 민주주의적 평등의 지향을 순화시키면서 자유를 보장하고 또한 근대의 이윤추구의 사회가 가져오는 개인주의적 고립을 극복할 수 있는 사회의 도덕으로서 기독교가 샤토브리앙이 추구했던 종교였다. 반면에 토크빌은 기독교를 말하기보다는‘종교 일반’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종교는 민주주의 시대에 필요한 하나의 기능을 갖는 사회적 구성 요소로서 위치지워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적 종교관을 제시하려 한다. 토크빌은 샤토브리앙의 귀족주의적 한계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라는 ‘역사적 운동’속에서 민주주의를 교화할 수단으로 종교를 파악하고 있다.

If the 18th century had been the century of critique, the 19th was that of construction of the
new. This meant that the 19th century had to seek to realize the desires, that had carried the
18th and the French Revolution, in the political realities. In this context, the problem of
religion enters into the center of thinking of the 19th century. ‘New Christianism’ of Saint-
Simon, ‘Humanity’ of Comte, ‘Trial of return of medieval christianity’ by de Maistre and
Bonald, are its examples. In comparison, Guizot thought of the State as the organizer of
society. F.-A. de Chateaubriand and A. de Tocqueville tackled problems of religion while
accepting modern democracy. Chateaubriand considered christianity as moral of society.
Within the framework of aristocratic liberalism, religion played the role of realizing the
aristocratic values, or civic obligations, which refined democracy. Religion, that Chateaubriand
pursued, was moral of society which should refine desires of equality by democracy in
conserving liberty, and surmount individualistic isolation which comes from society of
interest. By contrast, Tocqueville talked about religion in general rather than christianism. For
Tocqueville, religion was a part of the social composition, with a specific function in the
democracy. He tried to propose the concept of democratic religion. He thought of religion as
means of refinement of democracy in historical movement, surmounting aristocratic limits in
Chateaubriand.
ISSN
1738-7477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90083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Social Sciences (사회과학대학)Institute of Korean Political Studies (한국정치연구소)한국정치연구 (Journal of Korean Politics)한국정치연구 Volume 14 Number 1/2 (2005)
  • mendeley

Items in S-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