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計劃家, 計劃敎育과 프로패셔날리즘 : 韓國的 現實과 展開方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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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崔相哲

Issue Date
1983
Publisher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Citation
환경논총, Vol.12, pp. 53-64
Abstract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計劃家라는 稱號를 標榜하게 된 集團은 都市計劃家를 중심으로 한 物的計劃家(physical planner) 들이었다. 英國의 王立都市計劃學會(Royal Town Planning Institute)가 1920年代에, 美國의 美國計劃家協會(American Planners Association)가 1930年代에 誕生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1959年 大韓國土計劃學會라는 이름으로 發足되었다. 日本의 都市計劃學會가 우리보다 10年 以上을 앞서 第2次大戰後 發足되었다.
나라마다 事情이 틀리므로 發足 當時 내건 趣旨도 반드시 一致하는 것은 아니었다. 英國이 19世紀末 社會改華論者를 중심으로 한 中産階級的「아이덴티티」의 寶現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면, 美國은 中産層 以上의 特定集團의 不動産價値 保存과 上流階層의 象徵的 審美的
欲求를 充足시키는데 一翼을 담당한 것은 否認할 수 없을 것 같다. 英國의 E. Howard, P.
Geddes와 美國의 D. Burnham이나 F. Olmsted와 같은 人物들로 代表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나 日本의 경우 이상과 같은 階級性은 처음부터 두드러진 것 같지 않으며 功利主義的 技術集團으로서 出發하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어떠한 理想的인 社會價値를 내세우고 出發하였다기 보다는 土木事業과 建築規制라는 技術的, 功利的 목적으로 特徵지워졌다. 처음부터 다른나라 計劃家들이 내건 理想主義的(utopian), 幻想的
(visionary), 改革的(reformative) 意志보다는 都市 및 地域計劃에 관심을 가진 寶務者와 專
門家들의 同好人的 性格과 土木및 建葉的 偏向에 대한 綜合計劃的 接近이라는 名目을 강하게 띄었다. 따라서 計劃家라는 專門 職業意識보다 都市 및 地域計劃學 以外의 土木, 建葉, 地理學 등 關聯 社會科學에 뿌리를 두고, 副業的·二重的 性格을 지니고 있었다.
ISSN
2288-4459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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