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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되찾는 동심(童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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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병한
Issue Date
2013
Publisher
서울대학교 명예교수협의회(Association of Emeritus Professors)
Citation
서울대학교 명예교수회보, Vol.9, pp. 147-153
Abstract
나는 열세 살이 될 때까지 일제 식민통치하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당시 일본은 중국과 미·영(美·英)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도청 소재지에 있는 일급지 학교였지만 교정을 몽땅 채마밭으로 갈아엎고 어린 학생들까지 식량생산의 역군으로 내몰렸다. 그리고 학동들은 모내기, 보리 베기, 건초생산, 솔뿌리 캐기, 관솔 자르기 등 고된 노동에 동원되었다. 솔뿌리와 관솔은 거기에서 비행기를 움직이는 연료를 짜낸다고 하였다. 그 당시 일제는 조선어문(朝鮮語文) 말살정책(抹殺政策)을 강력하게 추진해 오던 터라 교과서는 모두 일본어로 편찬된 것들뿐이었고, 우리들은 조선말로 된 글을 읽거나 조선말로 된 동시나 동요 따위는 아예 접해 볼 기회조차 없었다. 나는 일본어로 된 일본 동화 ‘모모타로’를 읽었고, 일본어로 일본 동요를 익혔고 일본어로 그 노래를 불렀다. 유야께 고야께데 히가 구레데 야마노 오데라노 가네가 나루. 오데데 쓰나이데 미나 가에로우.

가라스도 있쇼니 가에리마쇼. 그리고 구구단도 일본어로 외웠다. “니니가 시”, “니상가 로꾸”, “핫빠 로꾸쥬용” 하면서. 학년이 높아지면서 전황(戰況)의 추이에 따라 학동들은 동요 대신 일본 군가를 자주 불렀다. 그 무렵 불렀던 일본 군가는 그 노랫말이나 가락이 초등학교 학생들에게는 꽤나 어려웠을 것인데 나는 지금껏 그것들을 고스라니 기억하고 있다. 세뇌효과(洗腦效果)였는지도 모른다.
ISSN
2005-0526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94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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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Seoul National University(서울대학교)서울대학교 명예교수협의회서울대학교 명예교수회보(Annual report of professors emeriti Seoul National University)서울대 명예교수회보(Annual report of professors emeriti Seoul National University) Vol. 0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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