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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반 북한의 자주외교노선 채택에 관한 연구
Study on the Decision of North Korea's Self-Reliance Foreign Policy in the mid-196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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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응서
Issue Date
2012-02
Publisher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Citation
세계정치, Vol.16(남북한 관계와 국제정치 이론), pp. 237-287
Keywords
북한 외교 정채자주외교노선소련공산당대회중소 분쟁종파투쟁8월 전원회의self-relianceforeign policyNorth KoreaSino-Soviet conflictTwentieth Party Congress of the CPUSAugust plenum
Abstract
본 연구는 구조적 환경과 행위자의 선택, 그리고 구조와 선택을 매개한 정책 결정자의 인식의 상호 작용을 통해 1960년대 중반 북한 자주외교노선의 결정요인을 분석하고자 한다. 정권수립 이후 북한은 동아시아에 형성된 냉전구조 속에서 사회주의 대국이었던 소련과 중국에게 편승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밖”의 문제보다 “안”의 문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김일성은 경쟁세력을 차례로 숙청하며 권력을 집중화할 수 있었고, 단일지도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김일성은 1956년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 이후 전개된 흐루시초프의 신노선에 소극적으로 대응하였고, 이에 정권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던 소련파와 연안파의 불만을 촉진시켰다.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 심화와 당 지도부의 경제·인사 정책에 불만을 가졌던 경쟁 세력은 외부의 힘을 이용하여 당의 노선 변화를 도모하고자 하였고, 이러한 계획은 1956년 8월 전원회의를 통해 현실화되었다. 하지만 사전에 계획을 인지하고 있었던 김일성의 방해로 인해 연안파와 소련파의 계획은 실패하였고, 주도자들은 종파주의자로 낙인 찍혀 대규모 숙청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김일성의 과도한 권력집중을 일탈로 여기고 이를 우려한 소련과 중국은 미코얀과 펑더화이를 파견하여 북한의 내정에 간섭하였다. 이로써 김일성의 반(反)대국주의 의식은 심화되었고, 이후 중소 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국내정치에서 외부의 힘을 제거하고 단일지도 체제를 구축하였다. 1960년대가 시작되면서 중국과 소련의 갈등은 이념적 차원을 넘어 정책적 차원으로 확대되었으며 북한은 국내외의 문제에 사로잡힌 양국의 관심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대외관계를 주도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 북한의 대외관계는 소련과 중국의 압도적인 영향력 아래 있었지만 상호방위조약을 통해 양국과 대등한 관계를 형성함은 물론, 제3세계 국가들과의 대외관계를 적극적으로 확대하면서 자주외교노선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와 중소분쟁으로 이어지는 사회주의 진영의 구조적 환경의 변화 속에서 김일성을 비롯한 당 지도부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반(反)대국주의 인식으로 인해 어느 한 국가에 대한 일방적인 편승을 배제한 채 1960년대 중반 대외적으로 자주 외교노선을 공식화할 수 있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nalyse North Korea’s Foreign policy, called the self-reliance foreign policy, which was implemented in the mid-1960s. Among the various factors that can influence foreign policy, this paper concentrates on the interaction of structure, decision maker’s intention, and perception or values according to Carlsnaes’ dynamic model of analysing foreign policy change. After nation building, there have been two critical structural diversions in the Communist bloc-the Twentieth Party Congress of the CPUS in February 1956 and the Sino-Soviet conflict that began in the late 1950s. In each event, Kim Il-sung attempted to increase DPRK’s policy-making autonomy and exclude the political leverage of two brotherhood countries, Soviet and China, in the domestic politics. Kim’s strong anti-great power chauvinism was strengthened from his past experiences, and it was reinforced by two countries’ intervention in 1956. These two primary elements had influenced Kim Il-sung’s foreign policy decision making during his reign. In the late 1950s, Kim and his partisans concluded the intra-party conflict with two rival groups, the Soviet Korean and Yan’an groups. These events completely monopolized power in domestic politics. As the dispute between China and Soviet aggravated in the 1960s, North Korea could secure its policy-making autonomy from these two countries. It had become more equal that North Korea extended its diplomatic relations to the Third World nations in this period. On the basis of the consecutive policies, North Korea could implement the self-reliance foreign policy in around 1965.
ISSN
1738-2440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94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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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Social Sciences (사회과학대학)Center for International Studies (국제문제연구소)세계정치(Journal of World Politics)세계정치 1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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