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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만인계(萬人契)의 내부 구조와 실상
The internal structure and real facts of Maningye at the end of Korean Em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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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윤대원
Issue Date
2014-09
Publisher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Citation
한국문화, Vol.67, pp. 267-300
Keywords
Maningye(萬人契)Santonggye(算筒契)Samsipyukgye(三十六計)publicitymodernization
Abstract
한말 사회적으로 크게 성행했던 만인계, 산통계, 잡박계, 작파계, 삼십육계 등은 사행성 도박 내지 잡기로 비판받으며 단속의 대상이었다. 이들 계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이 만인계였다. 만인계는 계주가 추첨일과 등급에 따른 당첨금에 차이를 둔 당첨자 수 등을 정해두고 계표라는 이름의 복권을 일정 기간 판 뒤 정해진 추첨일에 그것을 산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추첨을 하고 추첨금을 지불했다. 추첨방식인 출통(出桶, 出筒)이란 계표의 번호를 쓴 제비[籤]이나 알[球]를 넣은 통을 흔들어 당첨자를 뽑는 방식이었다. 같은 무렵 納白契, 雜百契, 作百契, 作罷契 등으로 불린 자빡계는 모집 계원의 수만 적을 뿐 만인계의 축소판이나 마찬가지였다. 산통계는 만인계와 추첨방식은 같으나 1회의 추첨으로 계가 해산되는 만인계와는 달리 계원 모두가 당첨될 때까지 유지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삼십육계는 국내에 들어온 청인들이 불법적으로 행한 도박으로 내부구조나 추첨방식이 만인계나 산통계와는 크게 달랐다. 때문에 만인계와 자빡계는 만인계로 그리고 만인계류는 만인계, 산통계, 삼십육계를 모두 통칭하는 의미로 사용했음을 미리 밝혀둔다. 한말 만인계류는 일제의 통감부와 조선총독부가 식민통치에 필요한 자료를 획득할 목적으로 한국의 계에 관한 자료 수집 및 조사를 하면서 체계화되었다. 일제는 한말 만인계류를 전통적 계에 포함시켜 조사를 하고, 이들 계를 기능적 측면을 중심으로 기계적으로 분류했다. 이에 따라 만인계류는 금융적 측면인 수익성에 주목, ‘금융을 목적으로 하는 계’로 분류되어 이후 별다른 비판 없이 통용되었다. 이 같은 한국의 계에 관한 일제 당국의 분류는 기본적으로 한국의 계가 갖는 특수성이나 역사성을 무시한 것이기 때문에 만인계 등의 발생 배경과 유래는 물론 그 실상에 대해 혼란을 초래했다. 그러나 최근 전통적 계조직의 구조 원리와 역사적 변동을 추적한 연구에서는 만인계류를 자금 융통 내지는 투기를 목적으로 개항 이후 등장한 새로운 계로 또는 현대의 ‘계파동’과 연관하여 전통적 계의 변형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응하거나 그 틈새에서 생겨난 이질적인 형태 즉 사적인 윤번제 상호금융의 한 형태로 파악했다. 이처럼 만인계류에 대한 연구가 진전된 결과 이들 계를 전통적 계의 연장선에서 파악했던 일제시기의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 관심이 전통적 계의 구조나 사적 금융과 같은 경제적 부분에 집중되어, 한말 만인계류의 실체와 역사성을 파악하는데 여전히 한계가 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먼저 만인계와 산통계, 삼십육계를 중심으로 이들 계의 내부구조와 운영방식을 파악하여 만인계류의 실상은 물론 한말 사회상의 일단을 살펴보고자 한다.

Maningye(萬人契), Santonggye(算筒契) and Samsipyukgye(三十六計) that was prevalent at the end of Korean Empire was a form of the gambling and lottery making a big fortune on a single occasion. Among Maningye of the treaty ports there was ever received a permit from local authorities in order to do the public works. Although the central government prohibited, these Maningyes pursued the limited publicity and legitimacy at local level. Santonggye to pursue a lump sum showed a change that seek to profitability. But this Maningye’s prevalence was exposed to a cross-section of social time that a government discipline was collaping rapidly from down below unlike the Korean Empire’s modernization policy for the purpose of strengthening the emperor’s right. And this was a new social phenomenon appeared between Seoul and treaty ports where capitalist elements were transplanted and were urbanized rapidly.
ISSN
1226-8356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95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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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규장각한국학연구원)Korean Culture (한국문화) Korean Culture (한국문화) vol.65/68(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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