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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섬마을의 역사적민족지와 주민집단의 문화적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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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권혁희
Advisor
강정원
Major
사회과학대학 인류학과
Issue Date
2012-08
Publisher
서울대학교대학원
Keywords
역사인류학도시마을마을공동체문화적 정체성재개발과 도시역사전통의 발명과 포크로리즘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인류학과, 2012. 8. 강정원.
Abstract
이 연구는 한강 밤섬마을의 역사적민족지와 주민집단의 문화적 실천을 통해 밤섬사람들을 역사적 주체로서 의미화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밤섬주민들 의례의 핵심인 부군당을 개발과 재개발의 도시역사 속에서 마을공동체의 존재를 강렬하게 표출하는 장소로서 제안하고자 한다. 동시에, 그러한 장소를 매개로 변주되어 온 의례의 역사가 전통의 발명 그 이상을 설명해주는 마을의 역사일뿐 아니라, 밤섬마을 주민들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제안은 밤섬마을의 의례를 민속신앙의 차원으로 이해해 왔던 기존 연구 경향이나 개발의 희생자로서 표상화되었던 시각을 재조정함으로써, 기존의 주도적인 역사서술에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연구자는 밤섬과 한강변을 중심으로 하는 변화와 재편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들을 파악하는 것을 중요한 연구과제로 설정했으며, 현재 주민들의 문화적 실천이 과거로부터 연속되어 온 역사적 과정들과 연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밤섬마을의 현재가 오래된 시간적 과정 그리고 공간의 소멸과 재생으로 연결되는 복잡한 지점들이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먼저, 밤섬마을 형성의 시간적 과정은 자연환경과 지리적 구조 그리고 오랫동안 유지되고 지속된 사회경제적 체계를 장기지속의 관점으로 파악했다. 마을의 중요한 생업기술인 조선(造船)이 세대간 전수되어 왔으며, 그 작업 역시 가족과 친인척간 그리고 마을주민들 사이에서 이루어졌던 것은 한강수운이라는 사회경제적 체계 속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그 체계는 19세기 말 전통사회에서 제도적으로 파괴되었지만, 20세기 초 일본제국을 중심으로 하는 제국의 판도에서 형성된 무역구조, 유통과 교통의 혁신과정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전반까지 이어졌다. 이후 전개되는 정치적 격변과정 속에서 정부에 의해 강력하게 추동된 수자원 개발과 도시개발 행위가 착수되는 1960년대까지도 연속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1968년 밤섬이 여의도의 제방 둑을 만들기 위한 토석으로 사용되면서, 주민들은 거주지가 정해지지 않은 채 섬으로부터 나오게 된다. 이후, 이들은 서울시로부터 와우산에 대한 토지대부를 얻어냈으며, 섬에서 산으로 마을을 통째로 바꿔버린 현실 속에서도 주민 공동으로 축대를 쌓고 각자의 집을 만들어 갔다. 서울시가 연립주택을 건설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지만, 그들 스스로 5계단에 걸친 주택들을 만들어 모든 주민들이 집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들만의 밤섬마을을 재건하게 된다. 동시에 마을의 공동체적 의례인 부군당굿을 이어나갔으며, 그 수는 줄었지만 와우산 꼭대기에서도 배가 만들어졌다. 섬과 달라진 환경 속에서 부군당 의례는 시간과 방법, 상차림 등이 변화해갔지만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치러졌다. 밤섬에서와 같이 굿치성을 못할 때는 간소하게 진지치성으로 하게 되었지만, 부군당이 밤섬마을의 결속과 유대를 위해 필요하다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었다. 밤섬에서부터 했었던 초상계가 지속되었으며, 부군당을 개최하기 위한 공동기금이 마련되었는데, 이러한 형태는 이후에 만들어지는 향우회와 부군당보존회 건립의 토대를 닦게 된다. 전통적인 생업인 조선(造船) 역시 전문 배목수의 기술을 전수하는 주민들은 줄어들었지만 솜씨 좋은 기존 목수들은 한강에서 필요로 하는 보트배와 고깃배 제작을 독점해갔다.
동시에 이 과정에서 당대 도시개발의 역학은 개발에 대한 국가적 아젠다와 군인관료들의 신속한 추진력과 서구에서 유학한 기술 엘리트들 그리고 토건기업의 성장과 상호작용하면서 불도저로 환유(換喩)되는 속도주의 방식으로 추진된다. 밤섬폭파가 당대 하천개발과 홍수방지를 위한 토목공학의 한계점이었으며, 개발의 악례(惡例)였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당대 개발의 명제는 당위적인 가치로 추진되었다. 그 과정에서 밤섬주민들의 선택은 정해진 상황 속에서도 마을을 유지시키기 위한 전략을 시작하는 것이었으며, 여기서 이들의 역사를 개발의 그늘에 가려진 희생양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그들 스스로 그러한 말들을 거둬들이고 있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외부자들에게서 해석된 희생양으로서의 인식은 점점 그들이 적극적으로 마을의 역사와 전통을 유지해가려는 실천들 속에서 희미해지게 된다.
이러한 밤섬의 역사는 섬이 폭파된 지 30여 년이 흐른 다음 와우산 밤섬마을이 다시 한 번 개발로 휩싸이게 되면서 새롭게 재편된다. 특히, 신축 부군당을 관할 구청에서 불법 건축물로 철거를 통보하자 이들은 살아온 과정과 마을의 역사를 설명해가며 부군당의 존치를 주장하였으며 이러한 노력 끝에 구청으로부터 부군당의 존치를 확인받은 것은 물론이고, 한강의 밤섬으로 고향방문행사를 할 수 있는 지원을 받게 됨으로써 자신들의 역사를 연속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획득하게 된다. 동시에 부군당 신축을 기념한 대대적인 굿치성이 주민들의 기금으로 실행되었으며, 이후에도 매년 추렴을 통해 부군당에서의 의례를 멈추지 않고 지속하였다. 또한 의례의 지속은 무형문화재라는 제도의 수렴을 통해 확보하게 되는데, 2005년 부군당 의례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전승지원금과 행사비가 보조되어 안정적으로 마을의례와 주민들의 고향방문행사를 병행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현재 밤섬사람들의 의례가 단순히 창출되거나 관제화된 민속 그 이상의 의미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집단 내부와 외부자들에게 그들의 역사를 설명하고 해석하는 시도들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아카이빙과 큐레이팅으로 명명되는 이러한 행위는 마치 전시기획자의 시각으로 자신 집단의 역사자료를 수집하고 현재 이루어지는 행위들을 기록하여 전시하고 이를 설명하는 정교한 기획전의 형태를 띠고 있다. 또한 수집된 자료의 적극적인 전시를 통해 밤섬역사의 주체를 확인시키고 모형제작을 스스로 기획하고 고안하고 있는 행위들은 이들이 무형문화재로 창출된 민속으로서 수동적으로 기능하기 보다는 적극적인 역사적 실천의 주체로 행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곧 이러한 실천들은 무형문화재 제도가 밤섬사람들에게 선택되었으며, 이러한 과정은 밤섬마을 역사의 현재를 구성하는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의 의례는 제도에 의해 공모된 이벤트로 이해하기 이전에 밤섬마을이라는 집단에 의해 추동되어 만들어지고 있는 역사의 부분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연구자는 밤섬주민들에 의해 주도되는 다양한 문화적 실천들은 과거로부터 연속되어진 밤섬의 역사를 스스로 되돌아보고 의미화하고자 하는 주민들 내부의 역사쓰기 작업으로 의미 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외부에서 기억하는 밤섬의 역사 곧 여의도의 제방으로 사라져간 마을의 역사는 현대 한국사회에서 기억되지 않거나 개발의 역사의 일부로, 혹은 개발의 희생양으로 이미지화될 뿐이었다. 자신들의 생업인 조선(造船)이 언제부터 어떻게 전개되어 왔으며, 자신들이 살았던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들을 밝혀내려고 하는 노력, 그리고 자신들의 마을 의례에 담긴 의미들과 그 가치를 표현해내고 공유하고자 하는 시도들은 그들 나름의 역사쓰기 작업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밤섬주민들이 문화재지정을 갈망했으면서도 지정용어와 명칭, 주체의 모호성, 개최 시기와 운영방법 등에 걸쳐 지속적으로 비판을 제기하는 태도들에서도 발견된다. 이들이 토로하는 일종의 불만들은 자신들의 공동체를 원만하게 운영하고자 하는 열망의 표출이자 무형문화재 제도 그 자체가 가진 권력에 대항하는 내용이기도 했다. 사회적 제도의 안정적 지원과 자신들의 주체적 위치짓기 사이를 줄타기하며 전개시키고 있는 문화적 실천의 양상은 밤섬사람들 스스로가 역사를 써내려가는 주체임을 보여주고 있다.
요컨대, 연구자는 밤섬마을 연구의 의의를 도시개발의 역학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을 역사적 주체로 부상시킴으로서 문화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것은 당대 한강개발 과정에서 하중도의 제거가 유로를 직선화시켜 홍수를 방지하는 최선의 방법이었으며 이것이 당대 토목공학의 한계점이었다고 인정했듯이, 20세기 근대화 과정에서 문화의 문제가 역사를 직선화시키기 위해 주변화되었던 것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는 강의 균형적 역할을 했던 하중도(河中島)를 제거하고 강의 생태를 무시하는 일직선적인 흐름을 고집했던 과오를 성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밤섬연구는 하나의 목소리를 담은 직선적인 역사가 아닌 다양한 주변부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역사쓰기의 사례로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쓰기 문제의 구도 속에서 전통을 매개로 제기되는 문화정치학의 판을 좀 더 긴 역사의 호흡 속에서 볼 것을 제안한다.
This study seeks to ascribe significance to Bamseom villagers as historical subjects based on the historical ethnography of Bamseom Village and cultural practice of its villagers. Bugundang, the main site of rituals held by Bamseom villagers, is presented as a venue that is strongly indicative of the existence of the village community in the history of development and redevelopment. At the same time, the changing history of rituals owing to location will be interpreted not only as a history of the village that explains the invention of tradition, but also as a history created by Bamseom villagers themselves. Ultimately, by adopting a different approach from existing studies that view rituals of Bamseom village as a folk religion or victims of development, the dominant views of historical description will be balanced out. The documentation of changes and reorganization surrounding Bamseom and the banks of the Han River has been identified as the main task, and a relationship was found between the cultural practice of current villagers and continuing historical processes. This shows that todays Bamseom Village is connected to complex points associated with long periods of time, and the extinction and regeneration of space.
First of all, the periodic process behind the formation of Bamseom Village was studied from the perspective of long-term continuity of its natural environment, geographical structure, and socioeconomic system. Shipbuilding, the main source of livelihood in the village, has been passed down through generations. The socioeconomic system in the form of the Han Rivers water transport facilitated operations between family, relatives, and villagers. This system was institutionally removed from traditional society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but persisted until the 20th century despite innovations intrade, distribution and traffic during the reign of the Japanese empire in the early 20th century. Amidst rapid changes to policies, this continued until the 1960s, when the government actively pursued the development of water resources and urban development. In 1968, Bamseom was used for the embankment of Yeouido, and the villagers were driven out of the island. Later, they were loaned a plot of land in Wausan by government. Even with the change inhabitat from island to mountain, the villagers each built a home for themselves. They also continued the village ritual of Bugundang. With fewer villagers working as boatwrights, skilled carpenter stook over the building of boats and fishing vessels for use in the Han River.
The pace of urban development back then moved ahead like a bulldozer, propelled by mutual interaction between national agenda, the drive of military officials, technology experts who have studied in Western countries, and the growth of civil engineering companies. The blowing up of Bamseom marked the limit of civil engineering, which was aimed at river development and flood prevention. This was seen as a bad precedent of development, but development in those days was pursued based on rightful value. In this process, the people of Bamseom chose to devise a strategy to protect their village. Here, we cannot refer to their history as a scapegoat cowering in the shadow of development since this expression was reaped by the villagers themselves. This misconception by outsiders gradually faded with the villagers efforts to preserve the history and tradition of their village.
Thirty years after the bombing of Bamseom, the same village in Wausan is once again caught in a surge of development and facing reorganization. When the local office declared the new Bugundang as an unauthorized structure and ordered its demolition, the villagers argued for its preservation by describing its role in their lives and the history of the village. In addition to gaining approval from the local office, they received funding to visit their hometown of Bamseom in the Han River, thus having more opportunity to extend their history. Funds raised by the villagers were used to offer devout prayers commemorating the newly built Bugundang. Rituals at the Bugundang continued with annual fundraising. The continuity of rituals was further ensured by the policy on intangible cultural assets. In 2005, the rituals of Bugundang were designated as an intangible cultural asset. Government funding for preservation and various events provided the villagers with stability in performing rituals and a chance to visit their hometown.
The rituals of Bamseom villagers hold greater significance than being part of an invented or regulated folklore, as can be seen from their attempts to teach their history both within and outside the village. Also known as archiving and curating, they collect historical data and record current practices. Just like an exhibition planner, they tell their story in the form of an elaborate exhibition. Through an active display of collected materials, they identify themselves as the subject of Bamseom history. By directly participating in modeling, they do not merely exist passively as an intangible cultural asset, but serve as an active subject of historical practice. The policy for intangible cultural assets was thus adopted by Bamseom villagers, and this constitutes the history of Bamseom Village today. Their rituals were not born out of the above policy, but rather, developed as part of the history being created by Bamseom Village. As they continue their cultural practice with stable institutional support and a solidified identity, we can see that Bamseom villagers fulfill their role as historical subjects by writing their own history.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0387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Social Sciences (사회과학대학)Dept. of Anthropology (인류학과)Theses (Ph.D. / Sc.D._인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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