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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40년 일제강점기 조선인 민간신문의 사진을 통한 사회적 하층민 재현 연구
Photographic Representation of the Working Class in Dong-A Ilbo and Chosun Ilbo: 1920-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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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은희
Advisor
정형민
Major
사범대학 협동과정(미술교육전공)
Issue Date
2014-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하층민농민노동자빈민걸인the working classpeasantsindustrial workersthe poorvagrants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협동과정(미술교육전공), 2014. 8. 정형민.
Abstract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인 1920-40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두 민간신문에 게재된 사회적 하층민 사진의 분석을 통해 하층민이 시각화되는 양상을 규명하고, 이를 통해 신분별 인물 재현 양식의 차이, 하층민에 대한 지식인의 인식, 당시 신문사진의 성격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
본 논문에서 사회적 하층민이란 1920-1930년대 신문, 잡지에서 민중, 대중, 인민으로 지칭되었던 다수의 피지배층을 포괄하는 범주를 의미한다. 본고는 사회적 하층민 사진의 유형 파악 및 시기별 경향 탐색을 위해서는 양적분석방법을 활용하였으며, 개별 사진 분석에 있어서는 이미지와 캡션, 기사를 비교∙분석하는 질적분석을 병행하였다.
키워드 검색을 통해 확보한 약 1,200여 장의 하층민 사진을 분석한 결과, 사회적 하층민 사진의 일반적 유형은 원거리에서 찍은 군상(群像) 이었으며, 클로즈업 촬영을 통해 인물의 표정과 심리를 포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사진은 드물게 나타났다. 즉 사회적 하층민이 피사체일 경우 인물은 화면을 구성하는 배경의 일부처럼 등장하거나, 개개인의 정체성보다는 집단의 성격이 부각되도록 시각화되기 쉬웠다.
농민 사진 가운데 가장 많은 유형은 자연을 배경으로 인물을 원경에서 조망한 풍경사진이었다. 풍광사진에서 화면의 포커스는 자연에 맞춰지기 때문에 인물들의 남루한 옷차림과 여윈 신체, 지친 표정은 드러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빈번한 소작쟁의에도 불구하고 소작쟁의 사진 역시 지면에 거의 실리지 못했다. 다시 말해 사진을 통한 농민의 재현에 있어 농촌 일상 노동의 고단함이나 계급 갈등의 측면은 은폐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농민들의 초췌한 얼굴과 가난의 흔적이 클로즈업된 사진들은 자연재해나 특별 편성된 탐방보도와 같이 일회적이고 일화적 기사에 수반되었으며, 사회현실을 고발한다기 보다는 감상적 차원에서 약자에 대한 따스한 관심을 촉구하는 형태로 제시되고는 했다.
노동자 사진의 경우, 노동쟁의 및 노동절 시위와 관련된 내용이 전체 노동자 사진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계급갈등과 노동자 저항의 측면이 강조되었다. 특히 남자 파업노동자들은 당당한 모습으로 촬영되었는데, 이는 일반적인 사회적 하층민의 시각화 양상과는 차별되는 것이었다. 시기적으로 파업 사진은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전반 집중적으로 나타났다가 1930년대 후반 일제의 총동원체제가 가동되며 지면에서 사라졌다. 1930년대 후반부터 민간신문에는 노동자를 산업역군으로서 조명한 사진들이 실렸으며, 역설적이게도 일제의 노동 이데올로기는 그 착취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노동 장면을 심미적 측면에 맞춰 시각화한 이미지들이 제작되는 데 일조하였다.
빈민은 주로 시혜주의적 입장에서 재현되었다. 민간신문들은 빈민을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로 그려냄으로써, 빈곤과 나태함을 연관시키며 조선인의 민족성을 문제시 삼는 식민당국의 논리를 정면으로 부정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동포에 대한 동정이라는 민족적 연대가 강조되다 보니 종종 빈부격차와 사회 불평등의 측면이 묻히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또한 서소문 화교가(華僑街)와 같이 가난한 사람들이 민족의 테두리 밖에 위치할 때 이들에 대한 동정의 여지는 크게 줄어들었다. 빈민에 대한 기사의 톤이 한결같이 온정적이었던 것에 반해 노동이 전제되지 않는 걸인에 대한 시선은 양가적이었는데, 이는 노동이 빈곤에 수반되는 스티그마를 약화시키는 데 주요한 개념이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This thesis examines the photographic representation of the working class in Dong-A Ilbo and Chosun Ilbo from 1920-1940. Dong-A Ilbo and Chosun Ilbo were two major Korean-operated newspapers. Some 1200 photographs of the lower class were categorized into three groups: farmers or peasants, industrial workers, and the poor or vagrants.

In general, the working class was portrayed differently than their upper class counterparts in both Dong-A Ilbo and Chosun Ilbo. For example, when the labor class was photographed in newspapers, the workers were mostly seen in groups from a distance or from above. Thus, there was much less attention to capture the subjects facial expressions, personality or inner character.

Rural folks were frequently photographed in Dong-A Ilbo and Chosun Ilbo as part of an idyllic scene, recipients of the newspapers led rural education movements, or victims of natural disasters. Although there were frequent strikes by the peasants in the 1920-30s, photographs of rural unrests hardly ever appeared in the Dong-A Ilbo and Chosun Ilbo. Therefore, we can argue that rural folks were stereotyped either as part of a pastoral scene or passive victims.

In comparison to rural folks, factory workers were portrayed as more active. For example, the photographs of male factory workers on strike during the late 1920s and early 1930s show them as confident, resolved and organized. The photographic representation of male factory workers showed the Korean newspapers sympathetic attitude toward striking compatriots against the Japanese factory owners. However, newspaper photographs of labor disputes were quickly replaced from the mid-1930s by pictures of dedicated workers on the home front as Japan launched a full-scale invasion of China and cracked down on any industrial actions.

Dong-A Ilbo and Chosun Ilbo ran photography news of the destitute, and portrayed them as hard-working, but poor people. This practice contradicted the Japanese colonial officials claim that poverty was the consequence of moral depravity. While newspaper articles described the deprived living conditions of the poor in vivid terms, accompanying photographs did not portray poverty-stricken images in as much detail. Realistic images of poverty were mostly taken as embarrassing or shameful, not as an indictment against social injustice.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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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Education (사범대학)Program in Fine Arts Education (협동과정-미술교육전공)Theses (Ph.D. / Sc.D._협동과정-미술교육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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