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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요 청자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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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오영인
Advisor
장진성
Major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
Issue Date
2017-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관요동궁청자경국대전경국대전주해고동완상음양오행사상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고고미술사학과 미술사전공, 2017. 2. 장진성.
Abstract
조선 관요 청자는 조선시대 중앙 관영수공업체제의 가마에서 제작된 청색 자기이다. 조선 왕실은 각종 제도, 의례, 절차에 이르기까지 명의 영향을 받았고, 명 황실로부터 사여 받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두었다. 명 황실이 조선 왕실에 전한 자기는 귀한 대상으로 인식되었고, 경기도 광주 일대 가마에서 제작된 백자, 청화백자, 청자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즉, 관요 청자의 등장은 제작기술의 집약이나 자연스런 제작전개의 수순에 따른 것이 아니라 왕실의 수요, 선호, 인식을 반영하여 이례적으로 이뤄졌다. 특히 밝은 태토에 청색 유약이 두껍게 시유된 용천요 청자는 관요 청자 제작에 일종의 견본이 되었다.
조선 왕실은 형전을 처음 편찬할 당시부터 청자와 백자 사용에 구별을 두고자 하였다. 그러나 의 교정과 재간행 과정에서 자기 사용에 대한 조항은 누락되거나 오역되어 한동안 이행되지 못하였다. 결국 관요 청자는 왕실 내에서 엄격한 규제 없이 사용되었고, 1555년 의 규정이 이행되면서 비로소 동궁이 사용할 기명이 되었다. 조선의 각종 의례와 관제, 학문 등 다양한 분야에 근간이 된 음양오행사상은 동궁이 사용하거나 갖추는 물품의 종류와 색, 상징물을 결정하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청과 동, 청색과 동궁을 동일시한 실례는 자기뿐만 아니라 기, 규, 복식에서도 확인된다. 이는 과 에서 동궁이 사용하는 기명으로 청자가 선택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과 가 편찬된 시기는 조선 왕실이 왕권의 당위성을 입증하고, 공고히 하려던 시기였다. 결국 위계별로 자기 사용에 구분을 두고자한 것은 왕실과 사회의 규범을 정립시키려는데 목적이 있었다. 동궁은 왕조의 근간이자 장차 왕의 자질과 덕목을 갖춰야하는 존재로서 왕의 소용품과 구별되는 기물을 사용하도록 요구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동을 상징하는 청색, 동궁이 사용하는 기물을 청색 자기로 연관 지음으로써 동궁의 성격, 자질, 의미를 더 배가시켰고, 동궁 소용품으로 선택된 관요 청자 또한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관요 청자는 명대 자기를 재현하려는 조선 왕실의 의도에 의해 제작이 시작되었고, 동궁의 사용을 고려하여 제작이 지속될 수 있었다.
관요가 운영되기 시작한 15세기 후반은 제작기술의 습득, 인원의 구성과 분담 제작체계의 설정 등 제작환경을 확립하는데 일정 기간이 소요되었다. 그 결과 관요 청자는 광주 일대의 사기장과 지방에서 차출된 사기장의 기술력에 각각 영향을 받았다. 16세기 초반에 이르면 관요는 전국 각지에서 수준 높은 자기 제작기술을 가진 사기장이 집결하여 한층 다양한 자기를 제작하게 되었다. 관요 청자 또한 이전에 비해 기형과 문양이 늘어났고, 특히 상감기법이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관요에서 상감청자로 제작된 기종은 대부분 향로, 화분처럼 한자리에 거치시켜 하중을 가하는 특수기명이자 향 문화와 화훼 문화를 위한 기호품이었다. 흥미롭게도 이들 관요 청자의 기종은 백자보다 사용빈도와 위계에 있어 우위를 점하였고, 고려청자의 기형과 문양을 그대로 재현하였다. 당시 조선에서 향 문화와 화훼 문화는 왕실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향유되고 있었다. 한편으로 조선인들에게 고려청자는 색과 문양에 대해 감상하던 일종의 고동완상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이에 관요는 장식성이 중요한 기종을 백자 대신 청자로 제작하였고, 고려청자의 특징을 차용함으로써 사용자의 취향을 만족시키고자 하였다.
가 이행된 16세기 중반에는 관요 청자가 가장 다양한 기종과 기형으로 제작되었고, 무엇보다도 관요 백자의 영향이 뚜렷해졌다. 다만 관요 백자는 동일한 가마에서 제작된 경우라 하더라도 제작의 편차가 컸다. 반면에 관요 청자는 제작에 들인 공력의 지표를 고려할 때 양질 자기의 비중이 높은 차이를 보였다. 한편으로 관요 청자는 용천요 청자와 서로 분화된 영역에서 보완적인 관계로 사용되었고, 용천요 청자의 영향을 일부 받았다.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조선 왕실에 전해진 용천요 청자는 실제 유통된 용천요 청자와 차이를 보였다. 여기에 용천요 청자를 재현한 관요는 제작규모와 수준이 높은 가마로 한정되어 있었다. 이는 조선에서 선호되던 용천요 청자의 기종을 선별하여 수입하고, 특정 가마에 한해 제작을 주도한 이들이 있었음을 뜻한다.
당시 시전은 공물 조달의무와 함께 독점 영업권을 보장받았고, 외국 물품의 유입 관문으로서 주된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판매물목별로 독점 판매하는 방식을 취하였으며 점차 부유층이나 왕실 친족이 실질적인 운영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변모해나갔다. 왕실 친족은 시전뿐만 아니라 사옹원 도제조, 제조와 부제조를 도맡아 사옹원의 운영을 주도하였다. 다시 말해 그들은 시전을 통해 유통되는 자기의 종류, 수량을 산정하고 필요에 따라 사옹원에서 자기 제작을 진행시킬 수 있었다. 관요 청자 또한 대부분의 제작과 유통 일체가 시전과 사옹원의 운영을 전담한 왕실 친족에 의해 결정되었을 것이다. 자연히 용천요 청자의 유통과 이를 관요 청자로 재현한 것은 왕실 친족에 의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16세기 후반 조선 왕실은 지나친 행사와 자연재해로 인해 재정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왕실 행사를 줄이고 감선을 통해 타개책을 모색하였다. 관요 역시 운영의 효율성을 고려하여 이전에 비해 제작할 자기의 종류와 수량을 대폭 줄였고, 전담 제작할 청자의 종류와 수량을 적정선에서 분담하였다. 이후 17세기 전란을 겪으며 관요의 제작여건은 더욱 열악해졌고, 관요 청자는 가마에 상관없이 기형, 문양이 획일적이 되었다. 상감기법 대신 음각이나 첩소기법만을 이용하는 등 제작에 들이는 공력이 줄여나갔고, 제작수준 또한 확연히 낮아졌다.
17세기 후반이 되면 관요의 제작여건이 개선되고 청화백자의 제작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반면 관요 청자는 돌연 소멸하였다. 조선은 청과의 세공체제를 정립한 1646년 이후 청화안료를 원활히 수입할 수 있었고, 청화백자는 문인들의 묘지로도 제작될 만큼 보급되었다. 관요에서 개인의 주문에 따라 자기를 제작하는 경우가 늘어났고, 조선 왕실은 관요의 내부사정을 고려하여 사번을 일부 허용해주는 방식으로 태도 변화를 보였다. 사번이 허용된 관요는 시장과 더욱 긴밀하고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더 이상 신분고하에 따른 자기 사용은 무의미해졌고, 1616년 이후 왕실의 자기 사용에 대한 규제는 더 이상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조선은 왕실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색채와 장식이 표현된 채색 자기를 선호하였다. 이에 관요는 시장 논리에 따라 경쟁력 있는 기종과 기형, 문양을 선택하여 자기 제작에 적용해야 했다. 결국 관요 청자는 관요 운영체제의 변화와 사번의 허용에 따라 더 이상 동궁 소용자기로서의 역할을 상실하였다. 여기에 채색 자기를 선호하는 시장 논리에 따라 다채로운 문양이 없는 관요 청자는 제작되어야할 당위성을 잃었고, 소멸하였다.
요컨대 관요 청자의 시작은 명 황실로부터 받은 자기로 인해 이뤄졌다. 그러나 관요 청자는 왕조의 통치이념을 공고히 하려는 징표로 인지되어 동궁이 사용하는 기명으로 선택되었고, 오랜 기간 제작을 이어갈 수 있었다. 여기에 고려청자의 전통성과 조선 백자의 시대성을 모두 보여줌으로써 고려청자와 조선 백자의 간극을 연결하는 대상으로 의미가 있었다. 또한 제작될 당시부터 최적의 조건과 최상의 기술력이 부여되었으며 왕실을 비롯해 관청, 사찰, 시전, 민가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이 선호하던 대상이었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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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Archaeology and Art History (고고미술사학과)Theses (Ph.D. / Sc.D._고고미술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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