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텍스트 독서 체험의 인지과학적 이해

Abstract

이 논문은 인지과학적 관점에서 문학 텍스트 독서 체험의 본질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구체적으로, 이 연구는 문학 텍스트 독서의 핵심적 기능인 자아 만들기(self-making)의 과정, 즉 독자가 타인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전환하여 재서술(redescription)함으로써 자아의 경계를 넓혀가는 정신적 성장 과정을 주로 인지심리학의 연구 성과를 통하여 검토한다. 독자의 문학 텍스트 체험의 핵심에는 내러티브 텍스트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의도적 행동에 의한 사건의 연속으로 정의되는 내러티브는 삶과의 유사성에 근거한 세계 창조, 의미 만들기, 기억을 구성하는 정보 배열 방식, 자아의 구축 등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으로 인간 삶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문학 텍스트가 인간 마음속에서 실제 삶과 다르지 않은 하나의 병렬 세계로 경험되고 그러한 내러티브 경험이 독자 자신의 자아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것도 근원적으로 이러한 내러티브의 특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 논문에서는 문학 텍스트 독자의 내러티브 세계 구축과 관련되는 정신적 현상을 크게 독서 중 독자 경험과 독서 후 독자 변화로 나누어 검토하였다. 우선 독서 중 독자 경험은 내러티브 텍스트가 표상하는 세계 속에서 등장인물의 행위와 행위의 의도, 혹은 감정 상태를 정신적으로 시뮬레이션(mental simulation)하는 행위로 포착하였다. 인지심리학적 텍스트 이해 단계 중 상황모형(situation model)에 해당하는 정신적 시뮬레이션 행위를 통해 독자는 등장인물들이 처해있는 물리적 상황뿐만 아니라 인지적, 감정적 상태에까지 공감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공감은 독자 자신의 삶의 경험으로 추론될 수 있었다. 요컨대 텍스트 요소를 정신적으로 시뮬레이션하는 문학 텍스트 독서 체험은 독자가 타인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전환하는 재서술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문학 텍스트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새롭게 구성해 본 독자는 종종 현실 세계의 판단에 문학 텍스트 독서 경험을 연결시킨다. 인지과학적 관점에서는 독서체험이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기존 지식구조가 재편되는 학습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즉 독자는 새로운 이야기 정보를 이해할 때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대응시키는 추론을 통해 두 이야기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인식하는데, 그 결과물은 기존 지식 구조의 신념을 강화하거나 혹은 기존 구조를 확장 ․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학습된다. 이런 두 가지 방향의 인지적 학습은 한편으로는 독자 경험을 좀 더 명확히 인식하도록 이끌어 자신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독자 경험의 지평을 넓혀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게 해주면서 궁극적으로 독자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타인의 이야기를 독자의 경험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독자의 정신적 성장을 견인하는 문학 텍스트 독서 체험의 본질은 유년기의 초보독자, 그리고 성년기의 대중독자와 전문적 독자의 실제 사례를 통해서도 검토되었다. 전래 동화를 읽는 아동, 로맨스 소설을 읽는 여성 독자들, 그리고 같은 책 다시 읽기 프로젝트를 진행한 한 독서가의 경험을 통해 독서 중 정신적 시뮬레이션 현상, 그리고 기존 경험을 재확인해주거나 경험구조를 새로 형성하여 독자의 변화를 유발하는 독서의 영향력 등 인지과학적으로 밝혀 낸 문학 텍스트 독서 체험에 관한 연구 성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문학 텍스트 독서 체험의 가치는 텍스트 자체에 내재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텍스트를 독자의 상상력을 통해 자신의 체험으로 바꾸는 수행(practice)에 있음을 밝혀 낸 본 논문은 그동안 심미적 차원으로 국한하여 논의되어 오던 문학 텍스트 독서 체험을 인지과학의 틀에서 새로이 조명해봄으로써 체계적 설명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독서 체험의 함의를 다른 학문 분야와 연결시켜 논의의 장을 넓힐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특히 독자의 자아 만들기뿐만 아니라 자발적인 행동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측면에 있어서 문학 텍스트 독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교육과 접목되어야 할 중요한 주제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