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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나스의 하이데거 죽음론 비판에 관한 연구 : Different perspectives of death between Heidegger and Levi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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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한혜연

Advisor
박찬국
Major
인문대학 철학과(서양철학전공)
Issue Date
2017-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죽음자기본래성현상학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철학과(서양철학전공), 2017. 2. 박찬국.
Abstract
하이데거와 레비나스의 철학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은 진정한 인간성이란 무엇인가하는 물음에 대해 서로 다른 답변을 제시한다는 데에 있다. 이는 두 사람의 죽음론에 있어서의 관점의 차이에 입각해 있다. 본고는 레비나스가 자신의 고유한 죽음론과 윤리적 주체개념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하이데거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지점을 바로잡음으로써, 하이데거의 죽음론과 본래적 현존재의 의미를 보다 분명히 제시하여, 두 철학이 죽음론에서 근원적으로 다른 관점에 입각해 있음을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필자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부에서 하이데거가『존재와 시간』에서 수행한 현존재 분석론과 죽음론에 관하여 요약적으로 제시하여 본고의 논의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3부에서는 레비나스가 하이데거의 죽음론을 비판하면서 윤리적 주체개념을 제시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어서 4부에서는 레비나스가 죽음과 마주한 뒤 자신의 고유한 존재가능성을 되찾은 본래적 현존재를 자기중심적인 코나투스 에센디로 규정하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마지막으로 5부에서 본고의 의의와 항후과제들에 관하여 논하였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죽음 앞에서 타인과 절연되고, 고유한 존재가능성을 회복한 본래적 현존재는 자신의 존재보존의 욕망에 사로잡힌, 자기중심적인 코나투스 에센디이다. 이에 반해, 나의 죽음에 대해 타인의 고통을 우위에 두며, 타인을 위한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윤리적 주체야말로 진정한 인간적 가능성을 실현하는 자이다. 이처럼 본래적 현존재를 자신의 존재유지와 확장에의 욕구에 사로잡힌 이기적인 코나투스 에센디로 규정하는 것은, 하이데거의 현존재를 레비나스가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연구들은 이러한 지점에 주안하지 않았다. 레비나스 연구자들은 그의 하이데거에 대한 비판을 문자 그대로 해설하는데에 그쳤으며, 하이데거 연구자들은 그의 하이데거에 대한 비판이 그의 자의적인 해석에 입각해 있다는 판단 하에 이에 대해 연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고는 레비나스의 고유한 윤리적 주체개념과 그가 하이데거 비판에서 수행하는 현존재에 대한 비판을 가능한한 분리하여 분석하고 검토함으로써, 하이데거의 죽음론및 본래적 현존재의 의미를 보다 분명히 제시할 뿐만 아니라, 죽음론에 있어서 두 철학이 근원적으로 입장을 달리하는 지점을 밝혀내고자 시도하였다.
레비나스의 하이데거의 죽음론에 대한 비판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먼저, 하이데거의 현존재는 죽음을 고지하는 불안 앞에서 자신의 고유한 존재 가능성을 발견하고, 자신의 힘을 유지한다. 자신의 고유한 존재가능성을 되찾은 주체는 전보다 더 확고하고 자기중심적이 된다. 하지만 인간이 극도의 고통 속에서 전적인 수동성의 상태에서 자신의 한계와 마주할 때, 죽음은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따라서 불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존재가능성을 회복한 현존재는 진정으로 죽음과 마주했다고 할 수 없다. 둘째, 레비나스에게 있어서 죽음은 인간의 근원적 조건으로서의 확실한 종말이 아니라, 주체가 전적으로 다른 타자성과 관계맺고 있다는 사실 을 고지하는 사건이다. 이러한 타자성에 의해 주체의 자기중심적인 내면성이 깨어짐으로써, 인간은 타인과 진정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반해 하이데거의 본래적 현존재는 자신의 고유한 존재가능성을 최우선으로 여기면서 자기중심적인 내면성 속에 갇혀 있다. 그러므로 그의 현존재분석론은 이기주의적인 유아론이다. 이러한 레비나스의 주장은 하이데거가 현존재분석론에서 타인의 죽음에 대해 현존재 자신의 죽음을 우위에 두었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된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타인의 죽음은 주체 자신의 죽음과 마주하는 사태와 마찬가지로 주체의 자기중심적인 내면성을 깨트리는 사건이기에, 그것은 주체에 죽음에 대해 부차적인 지위를 차지하지 않는다. 셋째, 현존재의 유한성은 곧 현존재의 왜소함을 의미한다. 현존재가 본래적인 실존가능성을 향해 기투한다 하더라도, 그는 벗어날 수 없는 유한성의 비극에 사로잡혀 있는 자이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죽음과 마주하는 사태는 인간 개개인에게 허락된 고유한 삶의 가능성을 조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수동성의 상태에서 인간에게 무력함만을 안겨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보존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타인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윤리적 주체에게는 진정한 미래가 도래하며, 이를 통해 주체는 유한성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
필자는 본고에서 하이데거의 텍스트에 대한 보다 면밀한 분석에 입각하여, 이러한 레비나스의 하이데거의 죽음론에 대한 비판에 관하여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불안은 현존재에게 그의 기대나 의도와는 무관하게, 섬뜩함의 양상으로 들이닥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친숙한 일상적 세계와 이러한 세계에 의존하고 있었던 세인자기 역시 무너져 내린다는 의미에서, 하이데거의 불안은 레비나스의 고통만큼이나 전복적인 사건이다. 따라서 하이데거가 말하는 불안 역시도 현존재가 지금까지 자명하게 여기고 있었던 자신의 존재와 세계를 상실하고, 무의 심연이라는 전적인 타자성과 마주하게 되는 계기라고 보아야 한다. 또한 이러한 무의 심연과 마주하는 사태는 살아있는 현존재에게 찾아오는 유사 죽음의 체험으로써, 현존재가 예측불가능한 상황에서 마주하게될 죽음과 미리 직면하게 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 둘째, 존재의 베일로서 무는 현존재의 고유한 존재가능성을 개시함으로써, 세간적인 가치를 더 차지하기 위한 이해타산적인 관심에 의해 규정되어있었던 현존재의 세계에 대한 비본래적인 이해를 불식시키고, 그에게 근원적인 세계를 개현한다. 이로인해 불안을 계기로 현존재는 자신의 고유한 존재 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자들의 고유한 존재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깨어 있을 수 있게 된다. 셋째, 사실상 하이데거의 본래적 현존재는 유한성의 비극에 갇힌 자가 아니며, 죽을 운명에 처해 있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로부터 힘을 얻는 자이다. 본래적 자기를 되찾고 죽음으로 선구하는 현존재는, 유한성을 받아들임으로써 죽음이라는 극단적 가능성에 대해 자신을 자유롭게 내어주게 된다. 이처럼 필멸성에 대한 자각으로서 자기포기의 계기를 함축하는 죽음에의 선구는 현존재가 비본래적인 실존가능성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현존재는 자신에게 허락된 유한한 삶의 순간순간을 충일하게 살아내고자 하며, 그와 관계하는 다른 존재자들이 고유한 존재의 빛을 발할 수 있도록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는 자로 거듭나는 것이다. 따라서 본래적인 세계-내-존재로서의 현존재는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에만 몰두하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코나투스 에센디가 아니라, 다른 존재자들의 고유한 존재를 더 밝게 비춰주고, 이와 감응할 수 있는 존재의 진리의 터인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두 철학자의 죽음론에 대한 일련의 고찰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레비나스와 하이데거의 죽음론의 결정적인 차이는 이기주의적인 유아론이냐, 이타주의적인 윤리학이냐가 아니라, 주체 자신의 죽음을 모든 의미의 원천인 최종심급으로 간주하느냐, 아니면 죽음을 넘어서는 의미로부터 주체의 죽음을 사유하느냐에 있다는 사실을 포착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부정적 시각으로 인간의 유한성의 조건을 바라보는 관점과, 유한성의 조건을 그 자체로서 긍정해야 할 것으로 간주하는 관점 사이의 차이와 긴밀한 연관성 하에 있다.
레비나스 윤리학의 타자중심적인 사유방식은 최종심급은 나의 죽음 아닌, 고통 가운데 있는 타인의 부름에 대한 응답의 여부에 있다고 보고 있으며, 현존재의 유한성을 자기중심적인 코나투스 에센디의 비극으로 규정한다. 주체는 타인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내던지기로 선택함으로써, 유토피아적인 편재로서의 시간인 통시적 차원의 미래에로 연결되고, 비로소 유한성의 비극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레비나스는 절대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에 의거하여 시간과 죽음을 새롭게 사유하고자 하였으며, 타인과의 긴밀한 연대성을 통해 유한성의 극복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물론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현존재 자신의 죽음이 타인의 죽음에 대해 우위를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다. 타인의 죽음이 아닌, 현존재 자신의 죽음이야말로 현존재의 전체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현상학적 분석론이라는 존재론적 차원뿐만 아니라, 존재적 차원에서도 죽음은 개개의 현존재의 최종심급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래적 현존재가 타인을 위한 희생 자체가 근원적으로 불가능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코나투스에센디라는 레비나스의 비판에는 비약이 있다. 하이데거의 죽음론은 현존재 분석론의 일부인 만큼, 현존재인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현상학적 소묘이다. 따라서 하이데거는 죽음론에 있어서 삶의 전체성에 대한 숙고에 입각하여 차안적이고 현상학적인 분석을 수행한 것이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죽음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에게 있어서 죽음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현존재를 본래적 현존재로 거듭나게 하며, 불안 가운데 알려오는 자신에게 허락된 고유한 가능성인 유한한 시간을 충일하게 살아내는 것을 가능케 한다. 이러한 충일한 삶은 진실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다른 존재자들의 고유한 존재와 교감하는 삶과 다름아니다.
하이데거의 죽음론은 현존재의 유한성에 대한 긍정에 기반하고 있으며, 죽음이라는 어둠이 도리어 인간에게 허락된 시간의 순간순간을 더 밝게 비춰주며, 다른 존재자들과의 진정한 관계를 가능케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본고에서 하이데거의 현존재를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코나투스 에센디로 규정한 레비나스의 비판이 부당함을 논하였다. 더 나아가, 하이데거와 레비나스의 죽음론에서의 충돌은, 이기주의적 존재론대 이타주의적 윤리학으로 정식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유한성의 조건을 본래적 삶을 가능케하는 최종심급으로 볼 것인가, 아니라 주체가 죽음과 마주하는 사태를 타인에 대한 주체의 책임을 일깨우는 계기로 보고, 타인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유한성의 조건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볼 것인가하는 입장의 차이에 입각한 것임을 밝혔다. 이처럼 본고는 죽음론을 주제로 두 철학을 섬세하게 비교분석함으로써, 레비나스의 하이데거에 대한 과장된 비판을 거둬내고, 두 철학이 근원적으로 관점을 달리하는 지점을 드러내 보일 수 있었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하이데거와 레비나스는 현상학 전통에 속한 현대 유럽철학자로서, 죽음에 대한 논의를 현상학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필자는 두 철학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인 죽음론에 대한 비교분석을 통해, 하이데거의 죽음론의 의미를 보다 분명히 제시함과 동시에 긴밀한 관계에 있는 두 철학에 대한 비교분석을 위한 초석을 마련하고자 시도하였다. 이러한 작업은 하이데거가 현존재분석론을 존재일반의 의미를 궁구하는 기초존재론으로 삼으며, 레비나스 역시 윤리적 주체에 대한 인간학적 분석을 존재다원론이라는 그의 형이상학의 근간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20세기의 마지막 형이상학자라고 할 수 있는 두 철학자의 사유의 지형도를 조감하는 작업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3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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