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무르 제국 정치적 정체성의 변화: 모굴한국과의 관계를 통해서

Abstract

차가다이 울루스는 1340년대에 동과 서로 분열되었다. 차가다이 울루스의 분열 이후 동부에는 모굴 한국이, 서부에는 티무르조가 건설되었다. 모굴 한국이 차가다이 울루스의 정치적 전통을 유지한 것과 달리, 티무르조는 정치 상황의 변화에 따라 몽골 전통과 이슬람 전통을 조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티무르조의 정치적 정체성은 변화하였다. 그러나 분열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에는 과거로부터 비롯된 이념적 일체성이 존재하였다. 티무르조의 정체성이 발전함에 따라 이러한 관념은 점차 의미를 상실하였고, 결과적으로 모굴한국과의 관계 역시 변화하였다. 티무르는 트란스옥시아나의 통일 직후 모굴한국으로의 원정을 감행하였다. 당시 모굴리스탄의 지배자는 반란을 일으켜 칸의 지위를 찬탈한 카마르 웃 딘으로서, 티무르의 원정은 차가다이 한국의 재통합이라는 명분을 지닌 것이었다. 이때 티무르는 칭기스칸 전통의 지지자, 차가다이조의 재건자로 자처하였다. 한편 정복지가 확대되면서 티무르는 이슬람 세계에서 역시 지배의 정당성을 주장할 필요가 있었다. 티무르는 두 전통을 오가며 다양한 수준의 상징을 활용하여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티무르의 카리스마는 새로운 정체성의 원천으로서 존재하게 되었다. 티무르 사후의 분란을 통합한 것은 샤루흐였다. 샤루흐는 헤라트를 중심으로 통치하였고, 울룩벡을 사마르칸트의 통치자로 임명하였다. 샤루흐는 이슬람의 재건자로 자처했으나, 또한 몽골 전통을 유지하였다. 당시 샤루흐는 티무르조 가문들 간의 이데올로기 경쟁, 메시아운동 등 이념적 도전에 직면해있었다. 이에 대응하여 그는 이슬람의 지적 전통을 계발하여 정통성을 새롭게 공식화할 필요가 있었다. 샤루흐는 티무르의 신화적 측면을 발전시켜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구축하였다. 정치적 정체성의 변화는 모굴한국과의 관계에 반영되었다. 샤루흐 시기에 모굴한국은 티무르조와 구분되는 정체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차가다이 울루스와의 이념적 일체성은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모굴한국과의 관계에서 주된 역할을 담당한 것은 울룩벡이었다. 그는 상대국의 계승분쟁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모굴한국을 통제하고자 하였다. 처음에 울룩벡은 계승분쟁에서 패배한 쉬르 무함마드를 도와 우와이스를 축출하였다. 그러나 쉬르 무함마드는 티무르조에의 종속을 인정하지 않았고, 울룩벡은 다시 사마르칸트의 사툭 칸을 통해 정통성을 주장하며 모굴한국을 지배하고자 하였다. 샤루흐와 울룩벡 이후 사마르칸트와 헤라트를 차지한 것은 아부사이드였다. 그는 계승 분쟁을 통해 모굴 한국을 약화시키려고 했던 울룩벡의 정책을 계승하였다. 아부사이드는 유누스를 불러들여 에센 부카의 경쟁자로서 모굴한국의 칸으로 인정하였다. 이렇게 아부사이드는 모굴한국을 둘로 분열시킴으로써 그 세력을 무력화시키는데 성공하였다. 한편 이 시기에 티무르조의 변용된 정체성은 그들 자신에 의해 분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아부사이드는 칸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으며 과거의 이념적 일체성으로부터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아부사이드와 유누스의 연합은 양국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설 수도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세 시기를 거쳐 티무르조는 이슬람 전통 안에 그들의 제국을 자리매김함으로써 이슬람 세계의 일부가 되었다. 티무르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전설적인 표상이 되었고, 그의 신화는 티무르조의 후손들은 물론 후대의 국가들에 정치적 카리스마의 원천으로서 존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