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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중반 백제의 신라 고립책과 對倭관계 : Baekje(百濟)'s Relation with Wa(倭) for Isolating Silla(新羅) in the mid-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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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dvisor송기호-
dc.contributor.author박주선-
dc.date.accessioned2017-07-19T10:00:41Z-
dc.date.available2017-07-19T10:00:41Z-
dc.date.issued2014-08-
dc.identifier.other000000021909-
dc.identifier.urihttps://hdl.handle.net/10371/132205-
dc.description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국사학과, 2014. 8. 송기호.-
dc.description.abstract이 논문은 7세기 중반 국제정세에 따라 백제와 왜의 관계가 변화하는 추이를 검토한 것이다.
義慈王은 신라와의 다툼이 격화되자 물리적인 공격뿐만 아니라 외교적인 방법으로도 신라를 압박하려고 하였다. 이처럼 그가 신라를 상대로 추진한 정책은 신라 고립책이라고 할 수 있다. 武王은 재위 후반부터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唐과 倭를 대상으로 한 외교에 주력하였는데 이를 의자왕이 계승하여 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라 고립책으로 인해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발생하였다.
의자왕은 즉위 초부터 과감하게 신라를 공격함으로써 신라 공격을 만류하는 당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또한 백제와 당의 관계 악화는 왜 조정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왜에는 당의 팽창을 우려하며 당이 왜를 공격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존재하였다. 더욱이 당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 백제와 고구려가 사신을 보내 신라 고립책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자 왜 조정에서는 친백제세력이 약화되고 친신라세력이 득세하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645년 백제의 신라 급습 사건이 일어나자 친신라세력이 친백제정책을 주도하던 蘇我 本宗家를 멸망시키고 조정을 장악한 후 외교정책을 전환하였다. 이른바 乙巳의 變이 일어난 것이다.
정변을 일으키고 정권을 장악한 孝德 등 친신라세력은 신라를 통해 당과 교섭하기를 원하였다. 왜의 요청으로 신라의 大臣 金春秋가 647년 渡倭하였고 그는 648년 당에 들어가 왜의 表文을 전달하며 왜와 당의 관계를 중재하였다. 백제는 645년에 왜의 새로운 정권이 백제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이후 651년 백제가 사신을 보낼 때까지 양국의 사신 파견은 단절되었다. 이 기간 동안 백제는 647년부터 649년까지 신라를 공격했지만 모두 실패하며 신라에게 우위를 빼앗겼다.
의자왕은 651년 唐 高宗의 璽書를 통해 당과 신라의 군사적 밀착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에 새서 내용을 왜에 전달하며 왜를 다시 친백제로 끌어들이려고 하였다. 그런데 신라 사신이 唐服을 입고 왜에 나타나자 新羅征討論을 제기하는 등 반신라적인 분위기가 생겨났다. 당에 종속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해진 것이다. 결국 中大兄은 653년 飛鳥還都論을 주장하여 친신라정책을 추구하는 효덕과 결별하고 친백제정책을 추진하였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합치하여 653년 백제와 왜는 通好에 이르게 되었다. 백제에게 653년 통호는 큰 의미를 갖는 사건이었다. 왜를 둘러싼 외교 경쟁에서 백제가 신라에게 승리했을 뿐만 아니라 신라와의 대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력 중 唐을 제외한 고구려·왜를 포섭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의자왕의 의도는 고구려가 唐을 견제하고 왜가 백제를 지원하며 신라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고구려·백제·왜와 당·신라의 대결 구도는 이후 동아시아에 큰 변혁을 일으킨 국제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653년의 통호와 그 배경이 되는 백제의 신라 고립책은 큰 의미를 가진다.
백제와 왜가 비록 통호하였지만 이들의 관계는 공고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백제는 신라를 고립시키기 위하여 왜와 우호관계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반면 대외적 위기감이 팽배했던 왜 조정은 당의 팽창을 저지해 줄 대상이 필요했기 때문에 국제정세에 따라 백제·신라의 관계에 변화를 주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7세기 중반 백제와 왜의 관계가 변화하는 양상을 검토하면 백제는 신라 고립책에 몰두한 나머지 왜의 대외정책에 휘둘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시기 양국 관계는 왜의 사정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위태롭고 불안한 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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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description.tableofcontents국문초록

머리말 1

一. 무왕대 후반 백제와 왜의 관계 동요 5
1. 백제의 신라 공격 양상 5
2. 왜 내부의 친신라세력 대두 14

二. 의자왕대 전반 백제와 왜의 관계 악화 22
1. 의자왕의 신라 고립책 始動 22
2. 왜의 친신라정책 추진 34

三. 의자왕대 후반 백제와 왜의 우호관계 회복 45
1. 653년 백제와 왜의 通好 45
2. 백제‧왜 통호의 의의와 한계 58

맺음말 71

참고문헌 75

Abstract 82
-
dc.formatapplication/pdf-
dc.format.extent2648800 bytes-
dc.format.mediumapplication/pdf-
dc.language.isoko-
dc.publisher서울대학교 대학원-
dc.subject義慈王-
dc.subject신라 고립책-
dc.subject對倭관계-
dc.subject通好-
dc.subject대외적 위기감-
dc.subject.ddc951-
dc.title7세기 중반 백제의 신라 고립책과 對倭관계-
dc.title.alternativeBaekje(百濟)'s Relation with Wa(倭) for Isolating Silla(新羅) in the mid-7th Century-
dc.typeThesis-
dc.contributor.AlternativeAuthorPark, Jooseon-
dc.description.degreeMaster-
dc.citation.pagesⅴ, 84-
dc.contributor.affiliation인문대학 국사학과-
dc.date.awarded20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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