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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수신사 사행의 성격 -일본 외무성 자료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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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선영
Advisor
이상찬
Major
인문대학 국사학과
Issue Date
2017-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수신사김기수외교사절일본 외무성조일수호조규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국사학과, 2017. 2. 이상찬.
Abstract
1876년에 조일수호조규가 체결된 이후 조선은 일본으로 수신사라고 하는 사절을 네 차례에 걸쳐 파견했다. 수신사에 관해서는 일반적으로 일본의 신식 문물을 시찰하고 양국 간의 외교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사절이라는 설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수호조규가 맺어진 직후에 있었던 김기수의 제1차 수신사 사행은, 초청한 일본의 의도와 조선 측의 사행 태도가 대비된다는 점에서, 다른 사절에 비교할 때 그 성격이 복합적이다.
본 논문에서 활용한 주된 자료는 당시 일본 외무성에서 기록한 자료들이다. 제1차 수신사 사행이 갖는 특수성에 주목하여 일본 외무성 자료를 중심으로 파견이 결정된 배경과 준비 과정, 실제 사행 과정의 기록을 통해 그 특징과 성격을 추출해내고자 하였다. 제1차 수신사의 방문이 예고된 기간 동안, 일본 정부는 방대한 범위의 시찰 및 견문을 유도하고자 계획했다. 그 시찰의 대상으로는 근대화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각종 신식시설과 제도가 대거 포함되었다.
제1차 수신사 사행은 수호조규 체결을 전후한 메이지 일본의 대조선 외교 구상의 일환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데, 일본이 지속적으로 사신 파견을 권유한 것에 기인하여 파송이 결정된 것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조선 측에 메이지유신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했고, 당시 외교 현안으로 생각하고 있던 통상 문제와 러시아 남하 문제 등을 지속적으로 거론했다.
제1차 수신사가 파견된 것은 조일 간의 300년의 평화로운 성신외교가 막을 내리고 관계의 지형이 격변하던 시기였다. 서세동점에 직시한 조선은 통상을 요구해오는 구미 제국에 대해, 청국과의 사이에 있어 半屬的이던 입장을 실리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을 당초의 기본적인 자세로 취했다. 만국공법으로 무장하여 통상 개항을 요구해오던 일본 측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메이지유신을 단행하여 서구화를 꾀한 일본과 서양을 동일시하여 수교를 거부하던 다수의 관료들과 달리 고종은 수교에 적극적인 입장이었고,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라고 이야기되는 조일수호조규를 체결했다. 이후 제1차 수신사가 일본으로 파견되면서 조약 이후 파견된 최초의 사절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은 제1차 수신사의 복합적이고 과도기적인 성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제1차 수신사 김기수는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외교·시찰·견문·정탐 등과 관련한 활동들을 수행하고 돌아왔다. 김기수는 외교 활동으로서 예조에서 외무성으로 보내는 서계를 전달하고 예단을 증정했으며, 일본 정부 고관들과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시찰 활동의 경우, 일본 측이 마련한 계획에 비해 김기수가 실제 방문한 곳은 크게 못 미쳤는데, 사실상 대부분의 방문 권유에 대하여 거절하거나 일부 마지못해 응했다. 외교 활동에 있어서도 사명에 포함되지 않은 교제에 관해서는 경계하거나 응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조선 측이 인식한 사절의 파견 목적의 대요는 구호회복에 대한 축하와 회례에 있었기 때문이다. 즉, 조선 측에서 제1차 수신사를 파견한 의의는 통신사를 파견한 의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조선 측의 입장은 일본 측의 입장과는 대치를 이루는 것이었다. 차후 조선의 지도층이 점차 근대 기술과 제도를 도입하고자 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김기수의 복명 내용에서 비롯된 관심들이 반영되었기 때문에 거시적으로는 조선 측의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근대 조약의 체결이라는 결절점에도 불구하고, 또한 시간적 간격의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제1차 수신사는 후속 수신사들보다는 그 성격에서 통신사와 유사한 특징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수신사라는 사절은 근대적인 외교사절인 상주 사절로의 전환 속에서 과도기적인 체제였다. 제1차 수신사는 그러한 수신사 속에서도, 전통적인 사행의 개념과 근대 외교사절로서의 명목이 병존하고 있던, 두 층위에서 과도기적인 사절이었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32224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Korean History (국사학과)Theses (Master's Degree_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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