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

레브니의 『베흐비의 축제서』: 전통의 재해석과 서사적인 인물 표현의 등장

Cited 0 time in Web of 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Authors
이강온
Advisor
이주형
Major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미술사학전공)
Issue Date
2014-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레브니베흐비의 축제서왕실가계도축제서술탄 아흐메드 3세이브라힘 파샤오스만 미술오스만 회화튤립시대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고고미술사학과(미술사학전공), 2014. 2. 이주형.
Abstract
시인 세이드 휘세인 베흐비(Seyyid Hüseyin Vehbi, 미상~1736)에 의해 기록된 『베흐비의 축제서(Surname-i Vehbi)』는 오스만 제국의 술탄 아흐메드 3세(Sultan Ahmed Ⅲ, 재위 1703~30)가 네 아들의 할례를 축하하기 위해 개최한 1720년의 축제를 다루고 있다. 『베흐비의 축제서』는 삽화가 포함된 2점을 비롯하여 다양한 필사본으로 제작되었는데, 그중에서도 톱카프궁박물관(Topkapı Saray Musei) 소장 A3953의 필사본은 회화와 장식의 수준이 높고, 오스만 회화의 마지막 거장으로 손꼽히는 압뒬젤릴 첼레비 레브니(Abdülcelil Celebi Levni, 1680년경~1732)의 서명이 남아 있어서 왕실 혹은 대재상의 주문을 받아 제작된 가장 이른 작품으로 추정된다. 『베흐비의 축제서』에 담겨 있는 레브니의 작품은 다양한 구도와 색채를 활용한 생동감 있는 표현으로 16세기 고전기를 잇는 오스만 회화사의 두 번째 고전기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17세기 오스만 회화가 일종의 침체기를 겪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레브니의 『베흐비의 축제서』가 보여주는 다양한 회화적 변화 중에서도 주요 등장인물들의 구체적인 표현은 특별히 주목된다. 구체적으로 특징을 살려 묘사된 개별적인 술탄의 모습은 왕실 초상화의 규범이 확립된 16세기의 작품과 큰 차이를 보이며, 『베흐비의 축제서』에 연극적인 활기를 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에서 특징적인 인물 표현을 비롯한 레브니의 새로운 회화적 성취들은 구체적인 미술사적 분석 없이 단순히 유럽지향의 튤립시대라는 관점에서 논의되어 왔다. 튤립시대의 개념은 여전히 논쟁 중이지만, 확실한 것은 이 시대가 단순히 유럽 문화만을 지향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튤립시대에는 오히려 오스만다운 오스만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제국의 전성기인 16세기에 대한 향수가 지배적으로 공유되었다. 미술도 예외는 아니어서 유럽회화의 기법들은 레브니의 작품들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특히 인물들은 뚜렷한 윤곽선과 평면적인 얼굴로 표현되어서 오스만 궁정에서 활동했던 동시대 유럽 화가들의 작품과의 차이점을 분명히 한다.
『베흐비의 축제서』가 다루고 있는 왕실의 할례는 왕조의 정통성과 계승을 선언하며 이슬람을 매개로 사회를 통합하는 매우 중요한 의례였다. 그러나 16세기 이후로는 술탄의 지위가 약화되면서 할례 축제가 자주 치러지지 못했다. 18세기까지 삽화를 포함하는 독립된 형태로 제작된 축제서는 크게 두 권 뿐인데, 한 권은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에 제작된 『인티자미의 축제서(Surname-i Intizami)』이고, 다른 한권이 1720년 레브니가 그림을 그린 『베흐비의 축제서』이다. 1720년 할례 축제는 술탄 아흐메드 3세가 전성기의 술탄들처럼 안정적인 보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선언이었으며, 『베흐비의 축제서』의 제작은 그 자체로 16세기로 대표되는 오스만 제국의 고전기에 대한 향수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레브니의 『베흐비의 축제서』는 독립된 할례 축제서의 유일한 선례인 『인티자미의 축제서』의 전통을 계승하며, 동시에 18세기의 변화한 사회와 정치적 의도를 반영하여 제작되었다. 대재상 이브라힘 파샤(İbrahim Paşa, 재위 1718~1730)는 튤립시대의 정점에서 17세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술탄이 주도하는 새로운 문화적 사교의 장을 만들고자 했다. 『베흐비의 축제서』에 나타난 술탄 주도의 자유롭고 다채로운 장면은 이브라힘 파샤의 전략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베흐비의 축제서』에 나타나는 독특한 변화는 단순히 유럽의 영향에 의해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며, 정치적 의도를 민감하게 반영하는 오스만 역사서의 전통에 위에서 새로운 표현의 방식을 필요로 하는 시대적 요구에 대응한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베흐비의 축제서』에 나타나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특징적인 표현 역시 오스만 초상 표현의 전통 위에서 탄생하였다. 오스만 왕실 초상화의 규범은 16세기 화가 오스만이 그린 『기질의 책(Şemailname)』에서 확립되었다. 18세기에 레브니가 그린 왕실초상화인 『왕실가계도(Silsilename)』의 기본적인 틀은 16세기에 확립된 왕실 초상화의 전통을 따르고 있으나 그 표현은 크게 달라졌다. 『기질의 책』에서 술탄들은 유사한 복식과 생김새를 통해 왕조는 연속적인 통일성을 획득하고 술탄이라는 집단적인 권위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레브니가 그린 술탄들은 외양뿐만 아니라 시대의 상황까지 고려하여 분명한 특성이 강조된 개별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이는 16세기와 크게 달라진 18세기의 술탄의 지위와 정치적 의도를 반영한 것이었다.
더 흥미로운 점은 레브니가 처음 그렸을 당시 『왕실가계도』에는 외양을 묘사하는 글, 즉 힐예(Hilye)가 없다는 점이다. 『기질의 책』이 제작된 16세기는 오스만 제국의 정신으로 이슬람이 강조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이슬람에서는 형상을 창조하는 행위가 암묵적으로 금기시되었기 때문에 회화는 텍스트를 부연하기 위한 용도를 강조하게 되었다. 『기질의 책』의 초상화들은 힐예에 철저하게 종속되어 제작되었다. 그러나 레브니의 『왕실가계도』는 처음부터 힐예없이 회화만으로 구성되었다. 레브니의 초상들은 텍스트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기에 더욱 분명하게 스스로를 표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술탄의 생김새와 복식은 화가의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 새롭게 표현되었고, 레브니의 초상들은 텍스트에서 독립하여 스스로 정보를 전하게 된 것이다.
『왕실가계도』에서의 실험은 『베흐비의 축제서』로 이어진다. 자세히 살펴보면 레브니는 『베흐비의 축제서』에서 역시 텍스트와 구분되는 독립적인 회화의 서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레브니는 1720년 축제를 시간순서대로 기록하면서 동시에 축제의 여러 장소와 소재들을 제시함으로써 베흐비의 글 못지않은 다양한 정보를 전달한다. 그리고 레브니가 재구성한 이러한 회화의 서사에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구체적이고 특징적으로 표현된 인물들이다. 술탄 아흐메드 3세는 물론 당시 권력의 핵심을 이루고 있던 이브라힘 파샤 등 축제의 핵심인물들은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표현되었으며, 얼굴 표현만으로 신원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이는 『인티자미의 축제서』의 회화 속에 표현된 인물들의 모습이 글의 도움 없이는 그 신원을 알기 힘들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레브니의 구체적인 인물 표현은 단순히 그의 초상화 솜씨를 반영한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의도를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복잡한 시점과 동선 속에서 관람자들은 매 장면마다 술탄과 대재상이라는 두 주인공의 얼굴과 눈을 마주하게 된다. 화려한 축제를 주도한 술탄과 대재상의 분명한 존재를 반복적으로 인식하면서, 독자는 다시금 그들이 이끄는 서사 속으로 초대된다. 혼란스러운 화면 속에서도 뚜렷하게 자신의 존재를 보여주는 레브니의 개성적인 인물들은 회화 자체의 서사를 이끌어 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다.
『베흐비의 축제서』는 튤립시대의 문화적 풍요 위에서 16세기에 확립된 오스만 회화의 규범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레브니의 구체적인 인물 표현은 시대적 분위기와 정치적 요구, 종교의 제약과 화가의 욕구 사이에서 탄생한 흥미로운 회화적 성취였다. 그는 이슬람의 교리적 제약에 부합하는 평면적이고 비현실적인 공간과 인물의 묘사를 통해 유럽의 회화와 구분되는 오스만의 회화라는 전통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 역시 형상표현의 회화적 필요와 형상을 창조하는 것에 대한 이슬람의 제약 속에서 줄다리기를 이어가던 오스만의 화가이자 지식인이었다. 레브니는 16세기 오스만 회화가 교리적 금기를 피해가기 위해 의존했던 텍스트의 부연이라는 용도의 제약을 걷어내면서 스스로 이야기하는 독립적인 회화의 서사를 창조해냈다. 『베흐비의 축제서』에서 분명한 개성을 가지고 묘사된 인물들은 축제의 주인공이 되어 화가가 재구성하는 회화적 서사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레브니의 인물들은 자신의 분명한 얼굴을 보여주며, 스스로 자신들의 축제와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32276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Archaeology and Art History (고고미술사학과)Theses (Master's Degree_고고미술사학과)
  • mendeley

Items in S-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