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북한의 평화협정 제안 연구

Abstract

본 연구는 북한이 평화협정 논의에서 한국을 배제한 원인을 고찰한다. 1953년에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한반도에서는 정전체제가 지속되고 있으며, 이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불안정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과 북한은 정전상태를 종결짓기 위하여 각기 노력을 기울였으나, 양측의 이견으로 인해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였다. 남북이 대립하고 있는 사안 중 하나는 평화협정의 체결당사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으로, 북한은 1974년에 평화협정의 제안 대상을 한국에서 미국으로 전환하면서 이 의제에서 한국을 배제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1974년 이전까지 북한이 한국에 남북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하였다는 것에 주목하여 이러한 전환이 나타난 원인을 고찰한다. 이를 규명하기 위하여 우드로윌슨센터에서 공개한 구 공산권 국가의 외교문서의 내용을 활용한다. 위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 연구에서는 1970년대에 국제사회 및 한반도 차원에서 나타난 네 가지 요인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본다. 먼저, 국제사회의 측면에서 데탕트의 조류와 베트남전쟁의 역학이 북한에 미친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은 진영논리에 입각하여 사회주의진영의 연대와 미국에 대한 투쟁을 주장하였으나, 데탕트의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남북대화를 시작하였고 한국에 평화협정을 제안하였다. 한편, 1973년에 북베트남이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통하여 파리평화협정을 체결하였는데, 이는 북한이 미국에 평화협정을 제안하게 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변화는 북한의 전환을 일면 설명할 수 있지만, 한국을 배제한 원인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다. 때문에 본 연구에서는 평화협정의 당사자문제가 가시화되었던 유엔총회의 영향을 두 번째 요인으로 살펴본다. 데탕트의 분위기에 따라 사회주의진영 및 제3세계 국가들이 유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제28차 유엔총회부터는 한반도 문제가 의제로 상정되었다. 북한이 한국에 평화협정을 제안할 때에는 남북의 양자적 관계에 국한된 것이었으나, 유엔총회라는 국제적 무대에서 한반도 문제가 다루어짐에 따라 북한의 입장이 전환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한국정권의 정당성을 부정하면서 한국정부를 무시하였는데, 이것이 평화협정 의제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한편, 구 공산권 국가들의 외교문서에서는 북한이 한반도 내부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은 한국에 평화협정을 제안하는 것이 한국 내부의 분열을 촉진할 것이라 기대하였다. 이러한 북한의 목적을 고려하여 한국 내부의 정치적 불안정성을 세 번째 요인으로 살펴본다. 북한은 1971년에 실시된 한국의 대선과 총선의 결과를 토대로 한국의 야당세력이 신장되었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남북대화 및 평화협정 제안을 통해 이 세력과의 연합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한국에서 유신체제가 공고화되면서 야당세력의 역량을 제고하였고, 이들과의 연합가능성을 재평가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한국의 정치적 상황이 변화하면서 북한이 한국에 평화협정을 제안할 유인을 줄어든 것이다. 마지막으로 1970년대 초반에 나타난 남북간의 국력 변화를 살펴본다. 한국에 평화협정을 제안한 시기에는 주한미군이 일부 철수하면서 한반도의 군사적 변화가 나타났다. 북한은 이러한 변화를 기회로 인식하였고, 1960년대부터 지속된 경제적 우위를 토대로 한국에 대한 자신감을 표출하였다. 그러나 1974년을 전후로 군사적・경제적 변화가 나타나면서 힘의 균형이 전환되었고, 국력에 대한 북한의 평가 역시 변화된다. 기존에 북한이 한국에 대한 자신감을 기반으로 평화협정을 제안하였다고 할 때, 국력의 변화는 이러한 자신감의 상실로 이어졌고, 한국에 대한 배제를 야기한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위의 요인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북한이 한국을 평화협정 체결 대상에서 배제하게 되었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기존의 연구들이 상대적으로 국제사회의 역학에 주목하였던 것과 달리 한반도 차원의 요인을 검토하였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특히, 본 연구에서 활용한 구 공산권 국가들의 외교문서는 한국에 대한 북한의 평가를 파악하는데 유용한데, 이러한 점에서 북한과 관련된 새로운 자료의 발굴과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