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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다양체와 실험실-마을 : 자카르타 북부 빈민촌에서의 물 문제의 전개와 효과
Water Multiple and Lab-Village - Developments and Effects of Water Problem in a Kampung, North Jakarta, Indone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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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경묵
Advisor
오명석
Major
사회과학대학 인류학과
Issue Date
2017-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정책빈민물 다양체실험실마을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과학대학 인류학과, 2017. 8. 오명석.
Abstract
1960년대까지 P마을을 포함한 자카르타의 깜뿡은 국가의 ‘바깥’에 있었다. 30년간 이어졌던 인도네시아 최초의 도시빈민을 위한 정책(Kampung Improvement Project)이 남긴 것은 주민참여라는 이상(理想)이 아니라, 빈곤/빈민의 대표하고 재현하는 한 다발의 기술(技術)이다. 위로부터의 일방적인 사업이라 호되게 비판받았던 KIP 1기는 주민들에 의해 가장 강렬한 ‘성공적’ 정책으로 기억된다. 많은 전문가들이 빈민촌의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필수적이라 제시했던 2기에서의 도시기반시설의 확충은 빈민을 정책의 무대에서 끌어내렸다. KIP 3기는 바람직한 빈민 공동체를 선별하는 기준을 정교화하고, 공동체의 자발적 발전을 도울 ‘공평한’ 매개자로 공동체 개발 코디네이터(Community Development Coordinator)를 프로젝트의 필수요소로 도입한다. KIP 1기의 성공은 빈민들 스스로가 식별하고 해결할 수 있는 그들 내부의 적을 좁은 도로, 고여 있는 하수, 쓰레기 더미 등으로 설정한데 있었다. 빈민의 공동체는 열악한 생활조건이 제거된 상태로 명확히 제시되었다. 폭력적인 도시재개발과 철거 문제를 접어둔다면, 빈곤 문제란 마을 단위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도시 전체의 문제라는 올바른 접근에 기반 했던 2기는 각각의 빈민촌에 위기나 적을 제시하지 못했다. 1기와 2기에 대한 영향평가와 감사의 결과로 제시된 ‘주민참여’는 공동체 내부에 또 다른 외부를 끌어들인다. 빈민구제 프로그램에 ‘잘 들어맞는’ 공동체성의 객관적 지표와 주민과 외부를 연결하는 전문가(매개자)가 그것이다.
자카르타에서 가장 오랜 빈민촌 중의 하나로 KIP 사업을 모두 겪었고 2000년 이후 머시캅(Mercy Corp)을 비롯한 여러 국제 NGO의 활동의 무대였던 P 마을에서, 빈곤퇴치 프로그램은 곧 상수도 공동관리 시범사업, 하수도 정비, 공동화장실 정비, 쓰레기 처리, 홍수대처 프로그램으로 이어져왔다. P마을에는 3년 이상 계속 해당 지역에 살면서 개발프로젝트 전반과 관련한 주민활동을 지도하고 돕는 코디네이터가 활동하고 있었다. 코디네이터는 자카르타의 물 민영화와 우물물 오염, 매년 반복되는 홍수에 대처하기 위한 지역-기반의 프로젝트의 제안을 주민들과 함께 - 실질적으로는 제안서 작성 및 실행 계획과 관련된 업무를 거의 도맡아서 - 진행했다. 그는 마을 내부와 외부의 개발 주체 사이를 매개하는 내부인 같은 외부자(혹은 외부인 같은 내부자) 이었으며, ‘빈민촌과 빈민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적(혹은 문제)로 지목된 물 문제는 빈민촌 개발 프로젝트의 내용을 규정했다.
상습적인 침수와 깨끗한 물의 부족은 상-하수도 관리체계와 도시 난개발 그리고 수돗물 민영화 사업의 결과 야기된 문제이다. 예를 들어 새로 들어온 상수도관은 악명 높았던 물장수의 숫자를 현격히 줄였으나 상수도관 바로 옆에 거대한 물탱크를 설치하고 ‘비공식’ 사업을 벌이는 물 가게가 등장하였다. 거대한 물탱크를 설치하고 계속해서 물을 사용하는 가게로 인해 수압이 더욱 낮아졌고, 주-상수도관에 작은 파이프를 연결한 좁은 골목길 안쪽의 빈민들은 -이전의 물마피아 이었던 - 물가게 주인의 단골이 되었다. 시범사업으로 12통(RW)에 설치된 공동 마스터 계량기 사업은 불법/합법 주민을 나누지 않고 이례적으로 낮은 가격에 각 가구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파격적이고 이상적인 기획이었으나 수 만 명의 마을에 60가구를 외부(국제 NGO)의 기준으로 선정했다는 과정이 걸림돌이 되었다. 사업의 혜택을 입은 주민들은 이웃들과 충분치 않은 물을 나누어야만 했고 물가게에서 모자란 물을 사와야만 했다. 빈민지역 주민을 위해 낮게 책정된 수도요율은 인적이 드문 새벽 물탱크차에 물을 채워 인접한 부자 동네에 파는 물탱크 차를 불렀다. 공식적 물-네트워크를 확장하고자 했던 시도들은 비공식인 물-네트워크에 개입했으나 그것을 축출하지 못하고, ‘또 하나의’ 분기점을 만들어 내었는데, ‘이전의’ 공식/비공식과 ‘이후의’ 공식/비공식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물 가게의 수레, 공동 화장실/샤워실/빨래방, 대형 물탱크, 물차, 계량기 등을 발견할 수 있다.
보다 많은 주민이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상수도-네트워크에 직접 접속시키려는 목표는 온전히 완수되지 않았다. 마을에 도착한, 상수도 연장, 공동물탱크, 빈민지역의 낮은 수도요율, 물차 등은 ‘깨끗한 물’ 프로젝트가 기획했던 경로를 교란하고 구부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물의 행방은 널리 알려진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P 마을은 여전히 물 문제와 관련된 공동체 개발 프로젝트의 성공사례로 거론되는가? 첫째, 물가게의 등장이나 공동 마스터 미터의 이용을 둘러싼 갈등 등과 같이 프로젝트의 착수 시 설정하지 않았던 ‘예기치 않은 결과’는 후속 프로젝트를 다시 짜는 단계에서 고려의 대상이 될지언정,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평가항목에는 추가되지 않는다. 둘째, 지역 주민들과 활동가들 그리고 상부의 사무실은 프로젝트의 실패에 관한 적극적인 반론이나 의견을 내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P지역에서 개발 프로젝트가 계속해서 진행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셋째, P 마을은 ‘주민참여’와 ‘역량강화’이라는 요구조건의 문턱을 넘었다. 여러 프로젝트를 겪어온 ‘경력이 있는’ P 마을에는 사업 진행을 위한 여러 행사를 준비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다른 주민들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지킴이’ 조직이 존재한다. 물-관련 프로젝트를 포함한 지역개발 프로젝트는 주민참여와 역량강화를 궁극적인 목표로 내세우며 그 이상(理想)을 충족시킬 수 있는 조건을 지닌 ‘공동체’를 선별하여 시범사업을 진행한다. 프로젝트의 선별과정에서의 명확하고 가시적인 조건은 ‘이전에 프로그램을 별 무리 없이 진행했던’ 경력이다.
2014년 P마을에서는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쓰레기 은행은 첫째, 물길을 막고 하수의 흐름을 막는 쓰레기를 청소하여 홍수를 방지하고 깨끗한 환경을 만들며, 둘째, 수거한 재활용품을 간단하게 재가공하여 주민들에게 부-수입을 올리게 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P 마을은 쓰레기를 모아올 참여자를 동원하고, 대규모의 행사를 준비하며, 사업을 운영할 역량을 지닌 주체가 있다는 이유로 대규모 사업의 시범지역으로 선정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쓰레기 사업의 출범을 전후로 인도네시아의 다른 깜뿡에 모범사례를 전파하는 발표회와 강연회의 연사가 되었다.
설날(Chinese New Year's day)을 전후로 대략 2주간의 홍수의 절정에서 P 마을은 묘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마을 곳곳을 채운 물로 인해 (깨끗한) 물-프로젝트들은 정지하며 평소에는 보이지 않았던 ‘국가’의 모습과 역할이 전면에 드러난다. 깨끗한 물, 하수도 정비 등의 사업이 NGO의 주도하여 기획되고 실행되며 평가될 수 있는 반면, 홍수시기에 주민들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이는 국가뿐이다. 우기의 절정에서 코디네이터와 마을 지킴이들은 언제 구호물자가 도착하는지를 묻는 주민들의 질문에 시달리지만, 구호물자의 배포 시기는 ‘객관적으로’ 정할 수 없다. 홍수의 상황에서 합법적/불법적, 모범주민/(마을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보통의 빈민의 구분은 사라지고 모두가 같은 입장이 된다. 그리고 홍수의 절정에서 무상의 구호품(생수, 옷가지)와 거대한 이동식 물탱크, 흙탕물을 쓸 수 있게 해주는 놀라운 정수시설 등이 아무 조건 없이 무상으로 제공된다. 주민들은 1년 내내 홍수시기의 경험을 모험담처럼 떠든다. 깨끗한 물의 시기에는 보이지 않던 국가는 분배의 원칙을 적용하거나 주민을 식별하지 않고 무상의 선물을 배포한다. 주민을 보호하는 유일한 후견인으로서 ‘은총’을 베푸는 것이다. 그러나 홍수가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 정확히 말하자면 국가가 스스로 만들어낸 재해이자 국기 기능의 실패라는 점에서 무상원조는 주민에 대한 국가의 빚 갚기이기도 하다. 주민들은 구호품과 도움에 감사하지만 그와 동시에 ‘당연히 받아야할 것’이라 생각한다. 국가가 주민들의 ‘유일한’ 후견인으로서 가장 확실한 역할을 하는 순간은 그 자신의 실패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이다. 모범사례와 모범주민의 범주가 지워지고 군중으로서의 주민이 드러나는 상황은 ‘소독약 배포하기’로 마무리된다. 짧은 홍수에서 긴 깨끗한 물로 넘어가는 문턱에서, 코디네이터와 지킴이들은 NGO 조직을 통해 배포된 큰 소독약을 ‘등록된 자녀를 지닌 가구’마다 하나씩 나누어 주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소독약을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 앞에서 활동가들은 리스트를 작성하고 사진을 찍으며 ‘진짜’ 주민들을 다시 구분한다.

깜뿡에서는 수지에 맞지 않는 상수도 확장, 낮은 수도요율을 제공하는 친(親)-빈민 배려, 불법/합법의 구분을 포기하는 혁신적인 공동체의 마스터-계량기 시범 사업, 홍수 방지와 소득 증대를 연결시킨 쓰레기 은행,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모범 주민 지원, 홍수 시기의 무상 원조 등의 시도가 이어진다. 그 과정 속에서 깜뿡 외부 즉 국가, 국제 NGO, 자본의 프로그램은 마을에 그대로 들어오지 못한 채, 끊기고, 사라지고, 변형된다. 실험실-마을을 만드는 다양체로서의 물의 배치는 전유(專有) 기식(寄食) 포섭(包攝) 거부(拒否) 수용(收用) 등으로 채워진다. 실패가 거듭됨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정책 실험실’이 된 P마을은 개발 프로젝트의 성패의 여부를 뛰어넘어 더 높은 수준의 정책이 수행될 수 있는 가능성에 의해 재-생산된다.
물-관련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마을은 국가(와 NGO)의 정책의 실험실이며, 그 시공간 내에서 실험의 대상과 전제와 방법과 정해진 절차는 지속적으로 교란되고 꺾여 나간다. 실험실이 아니지만 마치 실험실처럼 다루어지는 깜뿡은, 가설이 결론으로 탈바꿈하는 투명한 검증이 진행되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가설-이론-검증수단 전체의 배치를 요구하고 또 만들어낸다. 마을에서 물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흐르고 또 일상생활에서의 역량강화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도구 속에서 망각되기도 하며, 범람하여 마을을 채우는 예외적인 상태에서는 유일한 조력자로서의 존재감 동시에 홍수를 막지 못한 무력한 관리자로서의 국가의 두 얼굴을 드러내기도 한다. 물- 다양체는 기밀실/관문과 그것들 사이의 연결이며, 서로 다르고 때로는 충돌하는 코드변환을 거친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36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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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Social Sciences (사회과학대학)Dept. of Anthropology (인류학과)Theses (Ph.D. / Sc.D._인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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