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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논리학』에서 학의 시원과 직접성
Der Anfang und die Unmittelbarkeit im Hegels Wissenschaft der Log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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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서세동
Advisor
정호근
Major
인문대학 철학과
Issue Date
2017-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헤겔논리학학의 시원직접성매개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인문대학 철학과, 2017. 8. 정호근.
Abstract
헤겔의 『논리학』은 사유 그 자체의 법칙을 제시하는데, 이로써 헤겔 전체 철학의 모든 기본 형식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이로 인해 『논리학』은 헤겔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최초의 관문으로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헤겔 철학을 공격하기 위한 그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특히, 『논리학』의 내용 중에서 학의 시원이 최초의 그리고 가장 격렬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헤겔 자신은 학의 시원을 직접성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정말로 직접적인 것인지 아니면 매개된 것인지에 대한 긴 논쟁의 역사가 존재한다. 셸링(F. W. J. Schelling)은 그 최초의 비판자이다. 셸링에 따르면 학의 시원이란, 궁극의 심급으로서의 풍부하며 내용으로 가득한 어떤 존재와 사유하는 정신 그 자체를 전제한다. 따라서 에서 시작하는 『논리학』의 전개운동은 사유하는 철학자가 진행시키는 것이지 논리 자신의 내재적 전개가 결코 아니다. 이는 헤겔이 말하는 개념 그 자체와 방법의 구별, 곧 방법의 특수한 면을 통하여 재반박할 수 있다. 개념 그 자체와 그것을 파악하는 우리의 앎이 분명 내용 상 일치하더라도, 형식에 있어서 구별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셸링이 말하는 철학자의 직관이란 학의 시원으로서의 직접적인 것을 파악하는 우리의 앎을 뜻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학의 시원을 개념 그 자체에서 반박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셸링의 비판은 헤겔 『논리학』에 대한 진정한 비판의 지위를 지니지는 못한다.
반면 헨리히(Dieter Henrich)는 부정의 방식(vis negationis)으로 학의 시원을 해석하고자 한다. 직접적인 것은 부정의 부정인 긍정, 순수한 자기관계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그에 따르면 직접적인 것 역시도 매개나 부정을 내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결론적으로 학의 시원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학의 시원으로서의 오직 직접적인 것 그 자체는 어떤 매개나 부정도 내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시원의 직접성은 지양 불가능한 애매함의 원천으로 치부되거나 혹은 토이니센(Michael Theunissen)에 따르면 진리가 아닌 가상(Schein)이다.
이러한 지반 위에서 누쪼(A. Nuzzo)와 아른트(A. Arndt)는 시원을 해석하고자 시도한다. 누쪼는 방법론적 반성의 관점에서 시원에 접근하려고 한다. 이때의 방법론적 반성이란 『논리학』의 전체 논리적 내용에 대한 회고적인 숙고인 절대적 방법에 의거하고 있음으로써 시원에 대한 접근이 띠게 되는 외면적인 성격을 극복한다. 아른트는 시원의 직접성이 매개된 직접성일 뿐만 아니라 매개하는 직접성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는 시원의 직접성을 직접성을 매개하는 직접성으로 정립하는 통일로 파악함으로써, 직접성과 매개가 내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띤다는 사실을 지적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이들의 시도 역시 성공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방법론적 반성의 관점과 매개하는 직접성의 사상 역시도 여전히 오직 직접적인 것 그 자체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방법론적 반성의 경우에도 절대이념의 절대적 방법을 경유하기 때문에 시원의 고유성이 훼손되는 문제가 있으며, 매개하는 직접성 역시도 매개한다라는 『논리학』의 더 고차적인 범주가 사용되고 있다. 학의 시원에 있어서는 비록 바로 그 시원으로부터 귀결된 범주들이라고 하더라도 이것들에 의해 학의 시원이 설명되어서는 안 된다. 오직 직접적인 것 자체의 개념 가운데에서 학의 시원이 말해져야만 한다.
이제 오직 직접적인 것 그 자체란 그저 직접적인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때의 직접적인 것이 직접적이지 않은 것과 다른 것인가? 만약 우리가 직접적인 것과 직접적이지 않은 것이 서로 구별된다고 말한다면, 이러한 생각은 오직 직접적인 것 그 자체에 맞지 않다. 왜냐하면 시원의 직접성에서는 어떠한 구별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직접적인 것과 직접적이지 않은 것이 서로 전혀 구별되지 않으며, 따라서 똑같은 직접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가장 순수한 직접성은 비(非)직접성에 대한 배제나 구별이 아니며, 비(非)직접성까지도 구별 없이 그저 직접성에 불과하다는 그러한 직접성이다.
이제 학의 시원으로서의 오직 직접적인 것 그 자체는 직접적인 것이면서도 직접적이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오직 직접적인 것 그 자체는 학의 시원 하에서 벌어지는 『논리학』의 운동을 설명해줄 수 있다. 이는 시원의 극도로 단순한 성질로부터 귀결된다. 이때의 극도의 단순함이란 직접성과 매개를 구별 없이 단순하게만 취급하는 사유의 태도를 뜻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아무런 선입견, 전제, 구별, 구체적인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직접적인 것과 직접적이지 않은 것조차도 다르지 않은 상태이다. 그리고 극도로 단순한 성질 속에 단순하지 않음 역시도 이처럼 들어있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 시원의 직접성은 더 이상 직접성이 아니게 되며, 사유의 운동이 비로소 시작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논리학』에서는 와 의 변증법으로 시작한다. 는 와 똑같이 무규정적인 직접성이다. 직접성이라는 극도로 단순한 성질에서는 와 가 전혀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와 가 같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 와 의 구별이 비로소 등장하기 시작할 때, 범주 이 나타난다. 하지만 은 시원의 사유 운동의 종착점이 아니다. 왜냐하면 은 매개의 논리가 지배하는 통일이기 때문에 직접성의 극도로 단순한 성질이 요구하는 요건(사변적 통일)을 갖추지 못하며, 따라서 제대로 된 구별 또한 마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지양되어 가 되는 운동은 이 요건을 갖추는 것이다. 에서는 와 가 단순한 통일을 이루면서, 하나의 완성된 범주로서 직접적인 것으로 복귀한다. 다시 말해서 직접적인 것이면서도 직접적이지 않은 것이라는 직접적인 것의 극도로 단순한 성질이 이해 가능한 형태로 범주화된다. 에서 비로소 등장하는 규정성은 A이면서도() 동시에 B는 아니다(). 이제 비로소 와 가 함께 협력하여 어떤 특정한 있음(Dasein)을 지시하는 것이다. 에서 에까지 이르는 논리학적 운동이 오직 직접적인 것 그 자체를 통해서 이해될 수 있으며, 이는 『논리학』의 일반적인 범주전개 운동의 시원적이고 형식적인 범형이다.
요컨대 학의 시원이라고 하는 오직 직접적인 것 그 자체에 이미 헤겔적인 논리학의 사변적 성격, 대립적인 계기들을 그것들의 통일 속에서 파악함이 직접적으로 존재한다. 또한 이를 통해 시원의 직접성은 매개의 매개 혹은 부정의 부정이 아닌 긍정 그 자체라는 점과 시원의 직접성 그 자체로부터 논리학적인 운동이 내재적으로 시작한다는 점이 확인된다. 이와 같이 직접성의 지극히 단순한 본성이야말로 부정, 구별, 매개, 논리학적 운동의 근본적인 토대이자 시원이다. 논리학의 범주 전개운동이란 직접성이 부정성을 경유하여 자기-자신-에게로-도달하는 것일 뿐이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38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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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Philosophy (철학과)Theses (Master's Degree_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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