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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한국 신극운동의 전개과정과 담론구조 : The Development and Discourse Structure of the 1930s Korean New-drama Movement

DC Field Value Language
dc.contributor.advisor양승국-
dc.contributor.author이광욱-
dc.date.accessioned2018-05-28T17:03:17Z-
dc.date.available2018-05-28T17:03:17Z-
dc.date.issued2018-02-
dc.identifier.other000000150864-
dc.identifier.urihttps://hdl.handle.net/10371/141066-
dc.description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2018. 2. 양승국.-
dc.description.abstract본고는 1930년대 한국 신극운동의 전개과정과 담론구조를 분석하여 신극 담당자들이 지향한 목표와 실천 방안의 정당성을 평가하고자 한 연구이다. 신극운동의 재출발이라는 선언과 함께 방법론에 대한 의식적인 자각이 일어났던 1930년대는 창작 및 공연 활동과 더불어 활발한 담론 실천이 병행되었다는 점에서 주목에 값하는 시기였다. 한편, 한국의 신극운동은 검열, 자본, 매체와 같은 요인들이 개입되어 있던 식민지기 극장이라는 특수한 시공간에서 전개된 것임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연극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의 변화가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던 1930년대의 문화적 지평을 고려한다면 이 시기 신극운동의 추이는 보다 복합적인 시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고의 주안점이다.
그간 신극운동은 사실주의를 중핵으로 삼는 근대극운동으로 규정되어 왔다. 그러나 1930년대의 신극운동은 이와 같은 도그마로 모두 수렴되지 않는 국면들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1930년대 후반기는 신극운동의 이상이 훼절된 시기로 평가되어 왔는데, 이러한 시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포괄적인 차원에서 신극운동의 정체성을 규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한국 신극운동의 역사는 단절을 전제하는 방식이 아닌 근원적 목표를 향한 유동적 연속체의 양상으로 서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극운동의 근원적 동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신극이 극장을 둘러싼 관객 공동체의 기대지평을 근거로 출현한 개념이었음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3.1 운동은 신극의 출현을 촉발한 사건이었는데, 점차 극장은 민중의 역량을 보존하고 전시할 수 있는 유력한 장소로 여겨지게 되었으며 감각적 의사소통을 통해 공동체의 일체감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연극을 천시하는 전통적 선입견을 감내해 왔던 과거 연극인들과 달리 신극의 담당자들은 사회적 인정의 장에 적극적으로 진입하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공공성을 획득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현철과 김유방은 신파극-신극 논쟁을 통해 예술적 연극의 생산자를 요청하는 새로운 세대의 입장을 대변하고자 했다. 선규정된 신극의 상은 극예술협회의 활동과 함께 구체화되었는데, 이들을 비롯한 학생극단들의 순회공연에 열렬한 호응을 보냈던 관객들은 극장구경을 곧 사회적 실천으로 받아들인 이들이기도 했다.
신극은 극장문화의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생산자들의 욕망과 인정의 심급으로 작동하는 수용자의 공동체를 근거로 형성된 개념이다. 또한 신극운동은 이와 같은 기대지평을 보존하는 가운데 연극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문화적 기획의 형태로 수행된 활동이었다. 주목할 것은 신극운동의 전개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예술적 양심이라는 윤리적 개념이 신극과 비-신극의 경계를 판가름하는 프레임으로 기능해 왔다는 점이다. 이는 표면적인 성과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 채 연극문화 건설이라는 미래 목표를 지향하는 관점으로, 한국 신극운동의 담론구조에서 드러나는 특수한 양상이다.
한편 토월회는 미분화된 형태로 존재하던 극장의 기대지평을 연극이라는 특수한 대상으로 초점화시키고자 했던 집단이었다. 공공적 목표를 내세우지 않았던 토월회의 공연은 기금 마련을 목적으로 하던 기존의 학생극 집단과 차별화되었으며, 무대 사실주의를 확립하고 종합예술로서의 연극을 추구하면서 사회적 명망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토월회의 역사적 좌표는 신극운동의 초창기에 드러난 두 조류가 교차하는 지점에 놓여 있었다. 즉, 동경 유학생들로 구성된 토월회는 극예술협회로부터 비롯된 문화운동의 선구성을 의식하고 있었지만, 기성 극단들의 자기반성을 통해 결성되었던 예술협회의 문제의식을 계승한 집단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종합예술로서의 연극을 추구했던 토월회는 단발적인 공연활동만으로 그들이 목표했던 예술적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을 자각하게 되었는데, 광무대를 장기 대관하여 상설공연을 시도한 것은 신극운동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론적 모색의 일환이었다. 경쟁적인 문화산업장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안정적인 극단 운영을 위한 물적 토대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토월회는 보다 진지한 신극운동을 요청했던 내부 구성원들의 반발에 직면하게 되었고, 끝내 활동의 동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1930년대의 신극운동을 대표했던 극연은 토월회의 활동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통해 출현한 집단이었다. 토월회의 한계는 다각도로 검토되었지만 특히 상업주의적 경향과 담론적 실천의 부재로 인한 신극 관객의 조직 실패는 결정적인 패착으로 지목되었다. 이에 극연은 경제적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동인들의 헌신적 결합에 근거한 활동을 구상하고자 했으며, 관객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적 프로그램을 진행해나갔다. 다만, 극연 역시 조직의 핵심 목표를 공연활동에 두게 되면서 지속가능한 신극운동을 추구하게 되었는데, 본고는 문화적 재생산이라는 관점을 통해 그들의 문화적 기획을 재검토하고자 했다. 극연의 담론적 실천은 신극의 지지자를 내포관객으로 설정하는 과정을 통해 구체화되었으며,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지식계층의 관객들은 신극운동의 성공을 보증하는 근거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에 따라 극연의 신극운동은 근대극운동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는 연구극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는데, 직역주의에 근거한 번역극과 교양으로서의 연극 개념은 곧 문화자본의 형성을 가능케 해 주었던 핵심적인 요소들이었다. 한편으로 이러한 문화자본은 흥행극으로 범주화되었던 당대의 대중극단들과의 구별짓기를 통해 형성된 것이었으며, 기실 신극의 정체성이란 흥행극이라는 타자를 전제할 때만 비로소 성립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또한 극연의 이론가들은 당대의 극장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영화에 대응하여 연극의 매체적 고유성을 담론화하는 작업을 병행했는데, 이를 통해 극연의 내포관객은 점차 문화적 블록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곧 신극 관객의 존재를 계몽의 대상으로 일원화시키고 신극의 상을 특권화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이와 같은 태도가 신극이 사회적 인정을 획득할 수 있었던 근거들과 괴리를 일으키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즉, 신극운동은 조선의 연극문화 건설이라는 긍정적 미래상을 전제할 때 비로소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극연의 문화적 기획에 내포된 편협성은 오히려 연극문화의 활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와 같은 경직된 태도는 극연이 대중화를 천명했던 2기 활동 때 오히려 강화되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극연의 구성원들은 가장 활발한 연극 활동을 보여주고 있던 흥행극단의 공연에 대해서는 아예 침묵하는 길을 택했으며, 오로지 고정 팬의 결집을 통해 신극의 명맥을 이어나가는 데만 역점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1930년대 후반기의 연극계에서 극연의 담론적 주도권에 균열을 내는 사건들이 족출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공연횟수의 증대를 목표로 삼았던 극연은 학생극 집단을 신극운동의 예비군으로 삼아 인력을 확충하고자 했지만, 이는 학생극단들이 추구했던 자율성과 자립성을 무시하는 방안이었다는 점에서 정당화될 수 없었다. 더욱이 당대의 학생극단들은 극연이 방기했던 민중극 수립의 목표를 적극적으로 수행한 집단이기도 했다. 또한 중앙무대의 결성을 기점으로 제기된 중간극과 이를 매개로 한 신진 연극인들의 담론적 실천은 기존의 신극운동에 대한 전면적 반성을 촉발했으며 극연이 축적해 왔던 문화자본의 붕괴를 가속화시켰다. 동아일보사에서 주최한 연극콩쿨은 신극계의 형성을 통해 지도집단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극연의 최종적 기획이었지만 한편으로 이 콩쿨은 그들의 문화적 지배력이 붕괴되는 지점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 준 장이기도 했다.
1930년대 후반기의 신극운동은 종합예술의 구현을 가능케 해 주는 기술적 역량의 토대 위에서 관객-배우-희곡을 아우르는 연극성을 모색하는 가운데 새로운 연극의 상을 지향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접어들면서 신극이라는 기호가 사라지고 연극이라는 명칭이 부각되게 된 현상이야말로 보다 전향적인 재평가를 요하는 국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논의에서 이 시기는 신극운동의 막다른 골목으로 묘사되는 가운데 통속화라는 윤리적 단죄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국민연극으로 귀결되는 역사적 경로는 이와 같은 평가를 결정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로 작용해 왔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전시체제로의 돌입이라는 외적 맥락과 그에 따른 자발적 굴종이라는 현상은 신극운동의 전 역사를 패배적 서사로 갈음하는 결과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1930년대 후반기에 제출되었던 이론적 탐색의 성과들과 저류해 왔던 가치체계들의 복권 양상을 감안할 때 이와 같은 평가를 문면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더욱이 국민연극의 붕괴와 현대극장의 철저한 실패는 신극운동의 배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인정심급의 존재를 가늠케 해 주는 국면이기도 했다. 연극의 상수이자 변수인 관객의 존재와 그들이 내면화한 모종의 기대지평이야말로 국민연극의 내파와 균열을 불러일으킨 가장 유력한 진원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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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description.tableofcontentsⅠ. 서론 1

1. 연구사 검토 및 문제 제기 1
2. 연구의 시각과 연구 대상 24

Ⅱ. 극장의 공공성과 신극의 인정욕망 59

1. 신극 개념의 틈입과 공동체적 역량의 가시화 59
1.1. 신파극-신극 논쟁의 배경과 세대 분할의 기획 59
1.2. 생산자의 자기표현과 자발적 참여의 동인 80

2. 미분화된 기대지평의 초점화와 예술로서의 신극 102
2.1. 사회적 맥락의 탈각과 종합예술의 추구 102
2.2. 가치척도로서의 양심과 민중예술의 지향 118

Ⅲ. 담론 실천의 강화와 신극운동의 방향 설정 140

1. 신극운동의 재출발 담론과 방법론의 모색 140
1.1. 토월회 활동의 역사적 검토와 선별적 계승 140
1.2. 세계 근대극운동의 모델과 번역극 우선론 164

2. 극예술연구회의 결성과 교양으로서의 신극 186
2.1. 연구극의 제창과 아카데미시즘의 목표 186
2.2 흥행극의 틀짓기와 신극 담론의 구별짓기 207

Ⅳ. 공연 환경의 변화와 신극의 대응 228

1. 기술복제시대의 극장과 매체적 특수성의 탐색 228
1.1. 발성영화 상영의 정착 과정과 관객층의 재편 228
1.2. 중간유동층 관객의 특성과 연극다운 연극의 함의 249

2. 직업으로서의 신극과 초계층적 관객 공동체의 구상 273
2.1. 굴절된 민중연극론과 피상적 재현의 한계 273
2.2. 구조적 모순의 형상화와 우회공간으로서의 역사 290

3. 연극 전용극장의 신설과 문화적 블록의 구축 310
3.1. 동양극장의 배제와 부민관 공연의 딜레마 310
3.2. 호명된 애극가와 흥행가치로서의 예술성 325

Ⅴ. 억압된 가치체계의 복권과 신극의 유동 342

1. 신극계의 형성과 독점적 문화자본의 붕괴 342
1.1. 학생극단의 자율성 추구와 수직적 통합의 실패 342
1.2. 중앙무대의 문제제기와 화두로서의 중간극 364

2. 신진 연극인의 유입과 실천 방안의 다각화 387
2.1. 신극의 매력 담론과 연극성에 대한 재인식 387
2.2. 지식계층 인물의 형상화와 연극의 자기반영성 408

3. 신극의 존속 방안과 인정 심급과의 괴리 432
3.1. 구호로서의 신체제와 신극 담론의 전유 432
3.2. 내포관객의 분열과 국민연극의 균열 447


Ⅵ. 결론 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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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formatapplication/pdf-
dc.format.extent3821515 bytes-
dc.format.mediumapplication/pdf-
dc.language.isoko-
dc.publisher서울대학교 대학원-
dc.subject신극-
dc.subject흥행극-
dc.subject인정-
dc.subject기대지평-
dc.subject예술적 양심-
dc.subject극장환경-
dc.subject문화자본-
dc.subject번역극-
dc.subject토월회-
dc.subject극예술연구회-
dc.subject중간극-
dc.subject문화적 재생산-
dc.subject내포관객-
dc.subject문화적 블록-
dc.subject.ddc810-
dc.title1930년대 한국 신극운동의 전개과정과 담론구조-
dc.title.alternativeThe Development and Discourse Structure of the 1930s Korean New-drama Movement-
dc.typeThesis-
dc.description.degreeDoctor-
dc.contributor.affiliation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dc.date.awarded20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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