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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블랑쇼와 탈주체의 글쓰기-'목소리'와 '불안'을 중심으로
L'écriture comme désubjectivation-la voix et l'angoisse dans l'oeuvre de Maurice Blanc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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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서지형
Advisor
유호식
Major
인문대학 불어불문학과
Issue Date
2018-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인문대학 불어불문학과, 2018. 8. 유호식.
Abstract
국문초록





우리 연구의 목적은 블랑쇼의 주요 개념인 ‘바깥’의 현상으로서의 ‘목소리’와 ‘불안’을 고찰하는 것이다. 블랑쇼의 ‘바깥’은 물리적인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이성을 통하여 세계에 통일적인 질서를 부여할 능력을 지닌 주체의 지위를 박탈당할 위기의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의식의 균열과 같은 주체 내부의 붕괴, 주류 사회에 포섭되지 못한 주변, 이데올로기의 빈틈, 목적성과 방향성을 상실한 의식의 상태 등의 현상이 포함된다. 바깥의 문학, 바깥의 글쓰기는 보편적 사유에 관습적으로 ‘정합된 것’ 혹은 ‘객관적으로 승인된 것’의 가장자리를 부유하는 삶의 현상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 작업이다.

또한 바깥은 일상의 언어, 규범에 충실한 언어,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도구로서의 표준화된 언어의 가장자리를 배회하는 잉여물들의 공간이다. 현실적인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될 수 없어서 언어 밑에 잔존하는 상태로 있는 무엇인가를 표상해내려는 갈망은 작가적 소명으로 각인되어 블랑쇼로 하여금 끊임없이 글을 쓰도록 종용하는 내적 명령이 된다.

블랑쇼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의 의식을 통과하여 문자로 현실화된 글쓰기 스스로가 바깥을 구현하기를 시도했다. 바깥을 구현하는 글쓰기는 객관적 정보 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으로 강요된 주류 가치를 실어 나르는 기능을 상실한, 그야말로 언어적 표상 안에 다 축소시키지 못하고 버려졌던 것들을 새롭게 끌어들이는 글쓰기를 말한다. 언어의 현실적 기능과 멀어진 바깥의 언어들은 독자를 난해하고도 곤란한 독서로 이끈다. 바깥의 언어로 쓰인 책은 가독성을 방해하고 독자의 의식 속에서 명확히 규정되는 것을 방해한다.

그렇다면 읽히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글쓰기, 아무리 읽어도 어떤 특정한 의미에 고정되지 못하게 만드는 글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마치 ‘진리’에 관한 접근과도 유사한데, 우리의 좁은 인지로는 규정할 수 없고, 설명할 수는 없는 ‘비-존재성’에 대한 사유를 시도해볼 수 있다. ‘비존재’는, ‘존재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언어의 한계 때문에 표현될 수 없어서 빈 공백으로 남겨진 영역에 속해 있는 존재에 관한 것이다. 일상성의 세계는 이러한 공백을 인지하지 못하며 언어로 표현하지도 않는다. 언제나 미결의 상태로 남겨진 이 공백 앞에서 코기토적 자아는 무지상태에 놓이고 사물과 세계에 대한 주권을 실행할 수 없는 무력함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바깥’의 사유는 삶의 법칙에서 예기치 못하게 다가온 재난이자 모든 권력의 작동이 멈추는 지점에 대한 사유다.

블랑쇼 글쓰기는 바로 ‘바깥’을 사유할 뿐만 아니라, 글쓰기 자체가 ‘바깥’을 구현하는 것에 있다. 블랑쇼의 텍스트를 읽는 독자들은 작품 속에서 작가의 진의를 파악하기 어려우며, 작품 속에 표현된 어떤 인물에도 자기 자신을 투영하거나 고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블랑쇼가 쓴 대부분의 작품들은 서사 형식이 파괴된 파편적인 글쓰기를 고수하고 있고 텍스트 자체가 빈 중심을 확대하여 미결정성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블랑쇼의 텍스트는 독자에게 늘 모순적이다. 한편으로는 그 누구라도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한 개방된 텍스트가 되지만 주체의 인식 범주가 텍스트를 해독하고 재구조화를 시도하면 할수록 고정된 의미망에 가두기 어렵기 때문에 읽히지 못하고 미결 상태로만 남아있는 두 가지 모습을 지니고 있다.

본 논문은 블랑쇼의 텍스트의 주조를 이루는 들리는 효과에 주목했다. 블랑쇼의 ‘목소리’는 텍스트의 공백을 만들어내는 주요한 효과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a목소리는 그 자체로 ‘바깥’의 현현으로서, 텍스트의 조밀한 의미망에 결여를 부여해준다. 이 목소리의 효과는 비평과 소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한다. 목소리는 대부분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진원지가 불분명한 웅성거림, 말이 아닌 웅얼거림, 소음 등의 표상을 지닌다.

본 논문의 목표는 과연 이러한 목소리들의 표상이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지를 탐색했다. 블랑쇼의 목소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양철학의 전통에서 목소리가 차지하는 위상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은 이미 현대철학자인 자크 데리다의 67년에 발간된 세 개의 저작, 그라마톨로지(Grammatologie)』,『목소리와 현상 (Voix et phenomenologie)』, 『글쓰기와 차이(Écriture et la Différence)』에서 문제제기 되었다. 합리주의 철학에서 목소리는 이성을 보증하는 도구로서 기능해왔다. 의식을 울리는 목소리는 물질성을 지닌 것이 아니기에, 시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롭고 자기의식과 동일적인 관계를 구축한다. 목소리에 의한 자가 감응(auto-affection)이야말로 로고스가 현현되는 통로라는 것이다. 데리다는 플라톤의 여러 텍스트들에 해석적 비평을 가하면서 목소리의 로고스는 아버지의 법과 권위로 표상되고 목소리가 제거된 문자는 상대적으로 경원시되고 비천시 되었음에 주목했다. 데리다는 서양 철학의 로고스 중심주의가 음성중심주의와 결합되어 있음을 밝힌다.

블랑쇼는 글쓰기 속에서 목소리가 구현되기를 바랐는데, 이는 서유럽 합리주의 철학이 지향했던 것과 같이 주체를 보증하는 것으로서의 목소리가 아니라 사물의 존재성을 듣는 것이다. 블랑쇼의 목소리는 주체에 있지 않고 대상에 있다. 대상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주체는 자신의 좁은 범주 속에서 사고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절대 자아의 코기토(Cogito)를 포기한다는 것은 역으로, 자신 안에 무수히 존재하는 이질적인 타자성을 인식하고 일깨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블랑쇼는 목소리의 문제를 통해 철학적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의 저작 속에서 사물 속에서 침묵했던 목소리를 들리도록 만들었다. 그의 시도는 데리다의 문제제기를 시작점으로 삼은 기존의 개념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으로, 타자성이 극대화된, ‘두려운 낯설음(Unheimlich)’의 목소리를 환기한다.

우리는 블랑쇼의 목소리에서 원초적 쾌락의 문제에 주목했다. 블랑쇼가 작품 속에 재생해낸 목소리는 언어적 규범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 버려져야 했던 나머지들이자 ‘아버지-로고스-법’으로 이어지는 합리주의 전통에 저항하는 목소리다. 블랑쇼의 목소리는 ‘잃어버린 대상’의 회귀를 부추기고 그것에 매혹되게 만든다.

그러나 부권적 규범 속에 억압된 잃어버린 원초적 쾌락의 대상들이 우리 현실에 불쑥 나타나며, 혹은 작품의 정해진 형식과 플롯 사이의 틈으로 이질적인 것이 귀환했을 때 우리는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블랑쇼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주체가 통일적이고 질서정연한 세계의 모습을 구현해낼 능력을 상실한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진실적 차원은 불안정성과 위협 속에 내던져진 개인의 실존적 한계성이다.

본 논문의 3, 4부는 목소리를 통해 구현된 블랑쇼 작품의 불안성에 대해 논의한다. 블랑쇼의 소설은 실존의 본질에 관한 성찰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찰은 사르트르를 비롯한 당대의 여러 실존주의자들의 문제의식과는 차별화된다. 실존주의자들은 주체가 기투되었음을 자각하는데서 출발한다. 그 자각은 절대 자유를 향해 불안한 내적, 외적 현실에도 불구하고 반성적 사유를 향해 실천 행위를 촉구하는 또 다른 코기토를 실현하는 반면, 블랑쇼의 불안은 무수한 익명성 속에 귀속된 하나로서 존재하기를 바란다.

블랑쇼의 실천은 어떤 이데올로기적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완벽한 주체의 소멸 속에서 존재의 이질적인 웅얼거림과 소음으로 가득 찬 의식 속에서 실재와 의식의 경계 없이 놓이는 것을 원한다.

불안의 속성은 블랑쇼의 작품에서 언제나 보이지 않아도 잔존하고 있는 삶의 기반을 위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블랑쇼의 ‘바깥’의 효과로서 ‘목소리’와 ‘불안’을 규정한 이유도 바로 이러한 불안의 속성 때문이다.

블랑쇼의 불안은 거칠게 표현하자면, 정체성을 위협하는 ‘깨어진 거울’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거울의 통일적인 상은 자아의 시선이 사회적인 승인 하에 만들어낸 정체성을 반영하는 모습이다. 반면에 블랑쇼는 원근법의 시선을 내면화한 자아의 통일적 상의 봉합을 깨뜨리고 일그러뜨린 상을 제시한다. 자아는 또다른 자기 자신의 현현을 바라보는데, 그 자신은 자기가 알던 익숙한 모습이 아니라 괴물적인 상으로 변모된 위협적인 모습으로 재등장한다.

우리는 본론의 3, 4부에 걸쳐서 블랑쇼 소설에 나타난 육체성이 어떻게 바깥의 문제와 연결되는지 규명한다. 그로테스크한 육체성의 등장은 불안을 야기하는 핵심이자, 세계에 질서정연한 규범을 부여해주고 진리의 범주를 강화하는 주체의 통합적 구성 능력이 깨진 결과를 의미한다.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블랑쇼의 기괴한 육체성에 모성이라는 원초적인 대상에 대한 합일의 충동이 관여하고 있음에 주목했다. 블랑쇼의 육체성 뒤에는 모성과 분리되면서 버려진 대상을 내화하려는 충동이 강력하게 작동한다.

앞서, 목소리가 사회적 규범의 체계의 요구에 버려야 했던, 언표화 되지 못한 것들을 다시 재생 하려는 시도인 것처럼, 고통과 불안을 유발하는 타자의 ‘비천시(a-bjet)' 된 육체의 이미지들 역시 삶의 테두리 ‘바깥’으로 방출했던 대상들을 환기하는 것들이다. 블랑쇼 작품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공포의 대상에 매혹되는 장면들은 버려진 것을 반복적으로 내투사(introjection)한 환상의 결과물이다. 나르시시즘의 구도 속에서 나쁜 대상은 버려지지 못하고 자아와 다시 불안한 봉합을 유지한다. 원초적 대상에 사로잡힌 상태(possédé)는 존재의 경계를 지우고 ‘합일’을 추동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블랑쇼의 시나리오 안에 주체로 거듭나기 이전 상태로 되돌리려는 죽음충동이 잠재되어 있다고 보았다.

본론 4부에서는 모리스 블랑쇼의 첫 장편 소설이자 후속 소설들의 모태가 되는 『아미나다브(Aminadab)』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앞의 본문에서 논의된 죽음충동의 문제가 어떻게 불안의 효과를 드러내며 작품을 구성하는 중핵이 되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주요어 : 탈주체, 바깥, 목소리, 불안, 환상, 주이상스, 비천시, 사로잡힘.

학 번 : 2007-30012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43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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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French Language and Literature (불어불문학과)Theses (Ph.D. / Sc.D._불어불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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