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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長崎) 무역금융의 성장과 조일무역(朝日貿易)의 관계 : 제18국립은행의 설립과 조선 진출 과정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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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민

Advisor
박훈
Major
인문대학 동양사학과
Issue Date
2018-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인문대학 동양사학과, 2018. 8. 박훈.
Abstract
제18국립은행(第十八國立銀行)은 일본 나가사키 지역의 상인들이 16만 엔의 자본을 출자하여 1877년에 설립한 민간은행이다. 이 은행은 개업 직후부터 조선과 일본 간의 무역에 깊숙이 관여하며 무역은행으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고, 특히 1880년대 상하이에서 나가사키를 거쳐 조선으로 재수출되는 면제품의 유통을 중개하면서 조일무역 팽창에 기여하였다. 또한 1890년에는 인천에 최초의 지점을 출점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은행을 설립한 나가사키 상인들은 에도시대 조선과의 무역을 독점하였던 쓰시마 번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그들에게 무역 자금을 제공하는 등 이미 조일무역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본 논문의 과제는 나가사키 상인들이 제18국립은행을 설립하기까지의 경위와 조일무역 참여 과정을 분석하여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실제 교역을 수행하는 행위자로서의 쓰시마 상인들과, 수출품을 조달하고 수입품을 판매할 시장으로서의 나가사키, 그리고 이러한 무역에 자금을 제공하는 나가사키 상인으로 구성된 조일무역의 구조가 이미 19세기 초, 중엽부터 형성되어 조일수호조규 체결 이후로 연속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제Ⅰ장에서는 에도시대 조일무역을 독점하였던 쓰시마 번과 나가사키 상인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제18국립은행 설립 당시 가장 많은 자본을 출자한 나가미 가(永見家)는 에도시대에 나가사키의 회소무역에 참여할 수 있었던 본상인(本商人) 가문이었다. 이들은 1800년대 초부터 대부업과 무역업으로 자본을 축적하였고, 1850년대부터는 번(藩)을 대상으로 한 대부업인 다이묘가시(大名貸)를 시작하였다. 에도시대에 조일무역을 독점하였던 쓰시마 번이 바로 나가미 가의 주요 대출 대상 중 하나였다. 쓰시마 번은 조선에 수출할 상품의 조달을 위해서 선대(先貸)를 받는 등 무역에 필요한 자본을 나가사키 상인들에게서 빌리고 있는 모습이 확인된다. 쓰시마 번이 이처럼 나가사키의 상인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한 배경에는, 조선으로 수출할 주요 상품인 단목(丹木), 물소뿔[水牛角], 후추, 명반(明礬) 등의 상품을 나가사키에서 구입하고, 조선으로부터 수입한 해산물(주로 해삼)을 역시 나가사키를 통해 판매하는 무역의 구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1872년 쓰시마 번의 무역서(貿易署)가 해체될 당시 부채 40,696엔 중 21,295엔(약 52.3%)을 나가사키의 상인 및 사족들에게서 빌리고 있었음이 확인될 만큼, 나가사키 상인들의 자본은 이미 조일무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제Ⅱ장에서는 쓰시마 번의 독점무역체제가 해체되는 1872년부터 조일수호조규가 체결되는 1876년까지의 과도기 동안 조선과 일본 간의 무역이 어떤 행위자들에 의해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1859년 이후 일본의 연이은 개항으로 나가사키는 독점 무역항으로서의 위치를 상실하였지만, 기타 산업적 기반이 취약하였던 나가사키에서 대외 무역은 여전히 지역 경제의 중심 산업이었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을 배경으로 나가사키의 회소무역과 고리대업으로 성장한 나가미 가(永見家) 등의 자산가들은 점차 무역금융에 특화된 독립적 금융기관을 설립하기 시작한다. 1872년 1월 설립된 나가미마쓰다상사(永見松田商社)는 나가사키 상인들이 세운 최초의 독립적 금융기관으로서의 의의를 가지며, 이 회사는 1872년 말, 제18국립은행의 전신(前身)이라고 할 수 있는 릿세이회사(立誠會社)라는 주식회사 형태의 기관으로 전환된다. 릿세이회사는 예금업무, 어음취급은 물론 타 금융기관과의 환거래약정을 체결하는 등 은행으로서의 체제를 상당히 갖추고 있었다.

한편 이 시기 외무성의 외교문서에서 나타나는 조일무역의 동향을 살펴보면, 쓰시마의 무역서 해체 이후에도 쓰시마 상인들은 조선과 무역을 지속하고 있었으며, 수출입세도 면제를 받고 있었다. 쓰시마 상인들은 조선에서 일본으로 소가죽, 목면(무명), 해삼, 백미, 인삼 등을 수입하였고 일본에서 조선으로는 동(銅)과 함께 당목면, 비단, 천축목면 등 주로 나가사키를 통해 수입되던 직물류를 수출하여 쓰시마 상인들이 여전히 나가사키의 수입품을 조선에 재수출 하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특히 1880년대 조일무역의 팽창을 견인한 일본 상인들의 면직물 중계무역의 단초가 이미 이 시기에 확인된다. 이러한 무역 구조가 유지되는 가운데, 1872년 무렵부터 상인들의 독립적 금융기관이 태동한 나가사키와는 달리 쓰시마에서는 1879년에야 옛 쓰시마 번 출신의 사족들을 중심으로 최초의 은행이 설립된다. 이 시기 영세한 쓰시마 상인들에 대한 나가사키 자본의 영향력은 증대하였다.

제Ⅲ장에서는 제18국립은행의 영업보고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나가사키 상인들이 주축이되어 설립한 제18국립은행이 조일무역에 참여하는 과정을 살펴보고 여기에서 드러나는 특징을 분석하였다. 1877년 12월, 제18국립은행이 개업하였다. 이 은행은 주주의 83%가 평민(대부분 상인)이고, 이들의 지분율이 89%에 이르는 상인 은행이었다. 이 은행은 나가사키 회소무역과 고리대업으로 성장한 상인자본이 무역금융에 특화된 은행으로 발전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1897년 국립은행조례의 폐지 때까지 모두 153개가 설립된 국립은행 중 조선에 진출한 국립은행은 제1, 제102, 제18, 제58국립은행 등 모두 4개였다. 이 중 도쿄에서 설립된 제1국립은행은 1878년 부산에 지점을 출점하면서 가장 먼저 조선에 진출하였다. 옛 쓰시마 번의 사족 출신들이 1879년에 설립한 제102국립은행도 1881년을 전후하여 부산에 출장소를 세웠다. 제18국립은행은 이 두 은행에 비하여 조선 진출 시기가 늦지만, 먼저 조선에 진출한 두 은행과 환거래약정을 체결하여 조선 내에 지점을 설치하지 않고도 대 조선 영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특히 전통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던 옛 쓰시마 번 출신 사족들이 세운 제102국립은행의 지점은 제18국립은행의 업무를 대행하기도 하였으며, 향후 제18국립은행 조선 진출의 교두보가 되었다.

1877~1887년까지 제18국립은행의 영업보고서를 살펴보면, 화환어음 취급은 동 기간 50배 이상 팽창하였다. 특히 조선과의 거래 비중은 타 지역을 압도하였다. 제18국립은행의 대 조선 거래량의 급격한 증가를 견인한 것은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금건(金巾), 한랭사(寒冷紗) 등 면제품을 조선에 재수출하고, 조선으로부터 수입한 물건을 일본 국내에 유통하는 형태의 중계무역이었다. 1880~1890년대 초반까지는 상하이에서 나가사키로 수입되는 금건의 99%가 조선으로 재수출되어, 나가사키를 경유하여 부산으로 연결되는 이른바 상하이 네트워크의 나가사키-조선 구간이 최대로 기능하는 때였다. 제18국립은행의 경영활동은 중계무역이라는 산업에 특화되어 있던 나가사키와 그러한 여건 속에서 무역업과 고리대업으로 자본을 축적한 나가사키 상인들, 그리고 이들과 조일무역에 종사하던 쓰시마 상인들과의 관계가 19세기 후반에 국제적인 무역 네트워크의 일단(一端)으로 연속되어 1880년대 중국, 일본, 조선 간의 무역 규모를 신장시키는 기능을 하였음을 증명한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44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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