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목가적 사랑 다시 쓰기: 『당신 좋을 대로』

Abstract

본 논문은 목가 관습의 반복과 전유를 일삼는 『당신 좋을 대로』를 통해 개인과 사회적 관습이 맺는 긴밀한 관계를 살펴본다. 근대 초기 영국에서 목가 담론은 문학적 글쓰기에서 뿐만 아니라 종교 정치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생산된다. 이는 목가가 주어진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현실과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활발한 담론의 장으로 기능했음을 의미한다. 셰익스피어는 현실의 원칙과 논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종류의 삶의 형식들을 탐색하는 목가적 상상력을 예찬하면서도, 이러한 상상력 자체가 제도화되어 도리어 현실과의 연락 관계가 끊어진 도피주의로 이어지거나 현실의 경험을 미리 예단하고 왜곡하게 되는 상황을 경계한다. 『당신 좋을 대로』의 아든 숲은 목가의 관습이 흔히 상정하는 행복한 공간(locus amoenus)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목가의 관습이 가려온 현실 문제들이 서사를 통해 드러나는 공간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아든 숲에서 목가 형식이 허락하는 관습적 상상과 목가 형식 밖 현실의 괴리를 확인하고, 목가의 관습에 내재된 문제적 이데올로기를 읽어내야 하며, 그런 후에도 여전히 유효한 목가 이념이 남아 있다면 그것을 현실 속에서 구현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아든 숲에서의 축제적 경험은 인물들이 현실 궁정의 규범에서 벗어난 공간의 경험뿐만 아니라 아든 숲 안팎에서 통용되는 일상적/관습적 사고방식을 전면적으로 재고할 수 있는 기회의 경험이기도 하다. 『당신 좋을 대로』는 목가적 사랑의 관습을 통해 사회의 관습이 개인의 공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사적인 영역에까지, 그리고 외적 행동 규범뿐만 아니라 내면의 구성에도 깊이 관여한다는 점을 다룬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작품 속 인물들이 목가적 사랑의 관습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수행하는 경우에도 이를 자신의 삶의 맥락 속에서 전유 변형함으로써 관습 자체를 크고 작게 조정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재현한다. 이때 셰익스피어는 사랑이 기존 자아의 원칙과 논리만으로는 해명되지 않는 비일상적인 경험이고, 사랑에 빠진 인물은 욕망하고 상상하는 주체로 거듭나며, 이것이 목가적 사랑의 본질이라는 관찰을 제공한다. 셰익스피어는 사회의 관습에 비판적 거리를 만들어 내는 지성의 힘과 문제적 관습을 웃음으로 물리치는 기지의 힘을 신뢰한다. 기존의 목가 관습이 구애자의 자리에 주로 목동만 허락한 채 목녀는 구애의 대상으로 밀어내고 여성의 욕망과 공상에 관하여 남성의 관점에서 상상해 왔다면, 셰익스피어는 이러한 관습적 재현에 불만을 품은 여성 인물들을 내세워 목가 관습에 내재된 남성중심주의와 그 문제적 심리 기제를 가시화한다. 동시에 셰익스피어는 목가가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 놓은 여성의 욕망과 구애 이후의 결혼 문제를 목가의 형식 안에 담아냄으로써 목동의 일방적 사랑이 아니라 목동과 목녀의 상호적 사랑을 꿈꾼다. 셰익스피어는 작품 한 편에 목가적 사랑으로부터 끝까지 거리를 두고 그것을 무의미한 관습으로 조롱하는 인물을 배치하고 그를 통해 사회의 지배적 관습에 동화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상상한다. 하지만 목가적 사랑의 관습을 진지하게 비판하는 일은 사랑에 빠진 인물들에게 맡김으로써 관습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수행하는 일이 때로는 관습의 본래적 동기와 의미를 드러내고 외연을 수정하여 관습 또는 관습적 현실을 바꾸는 강력한 방법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