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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澈의 「前後美人曲」과 屈原의 「離騷」의 比較硏究 : 鄭澈의 「前後美人曲」과 屈原의 「離騷」의 比較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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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풍지
Advisor
서철원
Major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Issue Date
2018-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2018. 8. 서철원.
Abstract
본고에서는 정철의 「전후미인곡」과 굴원의 「이소」를 그 작가의식을 중심으로 비교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정철과 굴원의 작품 사이의 영향 관계를 구체적으로 규명하고, 조선시대에 송강가사가 "우리나라의 이소"에 비견되었던 근거를 두 작가의 인생과 작품세계, 시대적 배경 등을 두루 고려하여 밝히고자 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한국문학에서 굴원의 초사가 받아 온 비평적 가치와 송강가사에 대한 문학사적 인식의 기준을 다변화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마련된 것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Ⅱ장에서 다른 시대와 지역의 상황을 체험한 사인 굴원과 정철의 시대적·지역적 배경과 생애의 차이를 규명하였다. 먼저, 작가가 살았던 시대와 지역의 국가상황, 전반적인 정치 현실, 지배적 사상, 당대의 일반적인 현실대응 태도와 일반적인 군신관을 비교하였다. 그 다음으로, 작가 개인의 정치상황 ‧ 지배적인 사상 ‧ 현실대응 태도 ‧ 군신관을 중심으로 작가 생애를 비교하였다. 이에 따르면 굴원은 중국 전국시대 말기의 상황을 반영한 애국자였으며, 정철은 16세기 조선의 서인들이 지녔던 정치사상의 핵심을 드러낸 사대부였다.

Ⅲ장에서는 화자와 임금에 대한 태도를 비교하였다. 「이소」에 남성화자와 여성화자가 혼재되어 있는 것에 비해, 「전후미인곡」의 화자는 여성으로만 나타난다. 이는 두 작가가 그리려는 군신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굴원은 「이소」에서 여성화자로 자신의 충성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더 이상 사우로 섬기지 않는 임금에 대한 울분의 심정을 호소하고, 남성화자로 이제 다른 현군을 찾아 사우의 대접을 받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토로한다. 이와는 달리 정철은 「전후미인곡」에서 여성화자를 통해 임금과의 믿음과 존중이 영원하기를 기대하면서도 자신이 버림받은 이후에도 임금을 그리워하고 걱정한다는 마음을 드러낸다. 굴원은 일방적인 충효가 강조되지 않는 군신관계를 그리고 있지만, 정철은 일방적인 충효가 강조되는 군신관계를 그리고 있다. 다음으로 두 작가의 작품에서 임금에 대한 태도 차이가 나타난 이유를 살펴보았다. 임금에 대한 태도가 다른 이유는 두 작가의 군신관 및 그들이 처한 국가 상황과 정치 현실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제Ⅳ장에서는 시‧공간과 작가의 진퇴의식을 주로 비교하였다. 우선 두 작가의 작품은 시‧공간의 설정에서 차이를 보인다. 첫째, 「이소」에서 그리는 시간은 순환성이 없으며, 화자는 천상계와 지상계라는 두 세계를 이동하고 있다. 「전후미인곡」에서 그리는 시간은 춘하추동의 계절, 주야의 주기로 순환성이 있으며, 화자는 지상계에 존재하는 공간을 이동할 뿐 천상계로 이동하지 못한다. 둘째, 「이소」의 시‧공간구조가 순환하지 않는데 반해 「전후미인곡」의 시‧공간구조는 순환하고 있다. 「이소」의 화자는 과거에 지상계의 조정에 있었지만 죽음으로써 미래에 팽함이 거처하는 지하계로 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전후미인곡」 의 화자는 과거에 임과 함께 천상계에 있었는데 미래에 변신으로써 천상계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다음으로 두 작가 작품의 시‧공간이 다르게 설정된 이유를 분석하였다. 이는 두 작가가 그리고자 했던 진퇴의식이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굴원은 「이소」에서 고국의 조정을 간신배가 있는 부정적인 공간으로 보기 때문에 다른 나라로 떠나고 싶으면서도 고국에 대한 사랑을 비롯한 여러 이유로 인해 망설였다. 그러나 정철은 「전후미인곡」에서 조정을 정적의 존재로 인한 부정적 공간으로 보지 않으며, 어쩔 수 없이 초야로 물러난 후 항상 임을 그리워하고 걱정해서 조정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결국 굴원은 작품에서 애국 때문에 다른 국가에 차마 가지 못하지만 고국의 조정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도 않으며, 고국에 대한 사랑과 미정의 이상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강조하고 고국의 정치에 대한 분노와 다른 국가에 가서 이상을 추구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표현한다. 반면 굴원과 달리 정철은 작품에서 결국 조정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더 확고해졌으며, 임금에 대한 사랑을 영원히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강조한다. 두 작가의 작품에서 진퇴의식이 다르게 나타난 이유를 정리하면, 무엇보다 두 작가 당대의 출처관이 차이를 보이며 두 작가가 처한 국가 상황과 정치현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Ⅲ, Ⅳ장을 통해 「이소」보다는 「전후미인곡」이 충신연주지사의 전형에 가깝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나아가 Ⅴ장에서는 송강가사가 동방이소로 불린 원인을 분석하였다. 먼저 서인사대부를 포함한 조선사대부가 굴원과 초사를 유교의 충신과 정전으로 간주했던 까닭을 살펴보았다. 주자 등의 중국사대부들은 처음에 중용에 맞지 않다고 여겨지던 굴원과 초사를 유교적 충신과 정전으로 만들었고, 서인사대부들은 주자의 시각을 통해서 초사를 이해하였다. 서인사대부는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고히 하려는 목적에서 송강가사를 정철과 그의 문학을 굴원과 초사에 비견하였다. 그들은 송강가사를 동방이소로 만들고자 송강가사의 문자화 및 한역과 송강가사 계승작 창작에 힘썼다. 이로 인해 송강가사는 굴원의 초사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방의 이소로 여겨진 것이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44749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국어국문학과)Theses (Master's Degree_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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