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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총 연간 후금의 조선 사신 접대 양상과 그 의미
The Aspect of Later Jins Treatment of Joseon Envoys in Tiancong(1627-1636) Era and Its Mea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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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영진
Advisor
구범진
Issue Date
2020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후금천총 연간조선 사신사신 접대예물의례Later Jin(後金)Tiancong(天聰) EraJoseon envoysEnvoy treatmentPresentCeremony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 서울대학교 대학원 : 인문대학 동양사학과, 2020. 8. 구범진.
Abstract
천총 연간(1627-1636) 후금과 조선은 정묘호란을 통해 형제관계의 틀로서 국교를 수립하고, 약 10년간 여러 현안을 놓고 교섭을 진행했다. 천총 연간 양국의 주된 교섭 통로는 국서 그리고 정기적・비정기적으로 파견된 사신이었다. 한편 사신의 왕래 과정에서는 사신 파견에 대한 일정한 반응으로서, 사신을 접대하는 절차들이 파생되었다. 따라서 천총 연간 후금과 조선의 사신 접대 과정은 양국이 주된 교섭 통로였던 사신 왕래 하에서 무엇을 의도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진행된 청조-조선 간의 사신 관련 연구와 천총 연간 후금-조선 간의 대외관계사 연구에서, 천총 연간 양국의 사신 접대와 관련된 총체적인 연구는 미진한 상황이다. 이에 본고는 주로 후금이 조선 사신을 접대하는 문제와 관련해, 여러 사료들을 종합하여 후금의 조선 사신 접대의 양상과 그 의미에 대해 규명하고자 하였다.
후금과 조선 양국의 사료에 산개된 천총 연간 후금의 조선 사신 접대 절차들을 재구성해 보면, 크게 영접・접견・선물 수여・환송의 단계가 진행되었다. 각각의 접대 절차들은 대체로 이전에 진행된 사례들을 참고해서 진행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천총 5년(1631) 6부가 설립된 이후부터는 조선 사신 접대 절차에 예부가 관여하는 모습도 확인된다. 바꿔 말하면, 천총 연간 후금은 조선 사신 접대의 절차들을 점진적으로 형성해 가는 과정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천총 연간 후금의 조선 사신 접대 사례들 중에서는 접대 절차의 큰 틀은 이행하되, 접대의 수준에 가시적인 변동이 확인되는 사례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주로 국서와 예물의 수령 여부, 수여한 선물이나 추가적인 연회 진행 등에서 일정한 수준 차이가 발생한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사신 접대란 사신 파견에 대한 일정한 반응이라는 점에서, 사신 접대 수준의 변동에는 사신의 파견을 전후한 시점에서 부각된 양국 간의 현안이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후금과 조선의 현안들 가운데 주로 조선 사신이 가져온 예물의 수량에 변동이 있거나 예물과 관련된 사안이 부각된 경우, 후금의 조선 사신 접대 수준이 변동했던 경향성을 살펴볼 수 있다.
한편 후금의 조선 사신 접대 사례들 중에서는 사신 접견을 후금 내부의 의례에서 진행하거나, 조선 사신을 후금 내부의 별도의 의례 자리에 참석하게 하는 경우들도 존재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주로 홍타이지가 의례의 중심이 되어, 후금의 군사적 성취나 홍타이지 개인의 군주권을 과시하는 목적이 강한 의례였다. 그리고 후금은 의례 과정에서 가시화된 후금의 군사적 위세나 홍타이지의 군주권 확립으로 대표되는 위세를 조선 사신에게 제시함으로써, 조선에 후금의 위세를 가시적인 형태로 과시하려는 기회로 삼았다. 아울러 천총 10년(1636) 후금이 국호를 대청으로, 연호를 숭덕으로 고치고 홍타이지가 관온인성황제로서 즉위한 의례에 조선 사신의 의례 참석을 강요한 사례를 토대로, 조선 사신의 의례 참석을 통해 다이칭 구룬의 황제로서 즉위한 홍타이지의 위세에 대한 조선의 인정을 이끌어 내려 했던 의도 또한 살펴볼 수 있다.
이렇듯 천총 연간 후금은 조선 사신 접대 절차를 형성해 가는 과정에 있었고, 그 형성 과정 하에서 접대의 변동을 통해 후금이 의도했던 것은 예물로 대표되는 경제적인 수요와 위세 과시로 대표되는 정치적인 수요의 충족이었다고 할 수 있다.
In Tianchong era, Later Jin(後金) and Joseon(朝鮮) formed a brotherly relationship and held negotiations over various issues about ten years. In this relationship, the main channel of negotiations between Later Jin and Joseon treatment was Diplomatic Documents(國書, Ma.bithe). Envoys(使臣, Ma.elcin) dispatched regularly or irregularly to deliver the diplomatic documents were also the main channel of negotiations.
As a response to the envoy's dispatch, the treatment of envoys was derived during the envoy's visit. Therefore, the treatment of envoys could be the clue to find the Later Jin and Joseon's intentions through the envoy exchange. However, there is a lack of research on the treatment of envoys dispatched from Later Jin and Joseon. Accordingly, the following dissertation examines the aspect of Later Jin's treatment of Joseon envoys in the Tiancong Era by compiling various historical records.
The stages of reconstructed procedures of Later Jin's treatment of Joseon envoys are; welcoming, reception, presentation of the gift, and farewell. Each of the procedures seemed to carry out by referring to previous cases. Additionally, The Board of Rites(禮部) was involved with the Treatment of Joseon envoys since its establishment in 1631. In other words, Later Jin's treatment of Joseon envoys was in the progress of forming specific procedures.
In the process of Later Jin's treatment of Joseon envoys, there are some cases in which there is a visible level difference in the overall procedures. Given that the treatment of envoys is a response to the dispatch of envoys, it is highly likely that level difference in the treatment of envoys was related to pending issues between Later Jin and Joseon before and after the dispatch. And among the various issues between Later Jin and Joseon, issues related to the presents brought by Joseon envoys were mostly responsible for the visible level difference in the treatment of Joseon envoys.
On the other hand, there were some cases that Later Jin's internal ceremonies were related to the treatment of Joseon envoys. These ceremonies were conducted to place Hong Taiji as the center of the rite, and show off the military achievements of Later Jin or the sovereignty of Hong Taiji. By attending Joseon envoy at internal ceremony, Later Jin intended to demonstrate the visualized authority through the ceremony and imprint its authority on Joseon. In 1636, Joseon envoys were enforced to attend the Hong Taiji's emperor enthronement. Through this case, Later Jin(Qing) 's intention was urging Joseon to agree with the authority of Hong Taiji as the emperor of Daicing Gurun(大淸).
Thus, Later Jin's treatment of Joseon envoys in the Tiancong Era was in the process of making specific procedures. Under the formation process, what Later Jin intended to do through the changes in the treatment of Joseon envoys was to meet the economic demand represented by the presents from Joseon and the political demand represented by the showing off its authority to Joseon.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70576

http://dcollection.snu.ac.kr/common/orgView/00000016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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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Asian History (동양사학과)Theses (Master's Degree_동양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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