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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주의 사회통치에 관한 연구 : A Study on Local Reform(Jibang-gaeryang) and Gongmin Education in Colonial Korea from the Perspective of Colonial Governing Strategy
지방개량과 공민교육을 중심으로

DC Field Value Language
dc.contributor.advisor박명규-
dc.contributor.author권동국-
dc.date.accessioned2022-04-20T07:00:34Z-
dc.date.available2022-04-20T07:00:34Z-
dc.date.issued2021-
dc.identifier.other000000167510-
dc.identifier.urihttps://hdl.handle.net/10371/178244-
dc.identifier.urihttps://dcollection.snu.ac.kr/common/orgView/000000167510ko_KR
dc.description학위논문(박사) -- 서울대학교대학원 :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 2021.8. 박명규.-
dc.description.abstract이 연구는 식민주의 사회통치라는 문제틀로서 식민지 지방개량과 공민교육의 문제를 역사사회학적 관점에서 분석 검토하였다. 시기적으로는 1920년부터 1930년대까지를 염두해 두었다. 이 시기는 국제적으로는 제1차세계대전이 막을 내리고 민주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의 확산이 본격화된 시기였고 식민지 한국 사회에서는 3·1운동이 일어나 식민통치의 방향전환이 모색되던 시기였 다. 아울러 사회경제적으로는 취학열, 입시열 등 교육열의 확산과 더불어 실업율의 증가, 공황의 빈발, 사상문제, 소작문제, 농촌 청년들의 방황 등이 사회문제화 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제국일본은 통치방식의 전환을 도모 하게 되고 여러 정책들이 식민지 사회에 이식되게 된다.
이 연구가 ‘일제 식민주의 사회통치’의 핵심적 현상 혹은 지표로서 고려한 것은 ‘지방개량’과 ‘공민교육’의 문제이다. 이 연구는 식민지 지방개량과 공민교육이 식민지배이래 일제의 일관된 사회통치 기획 즉, ‘일제 식민주의 사회통치’라는 문제틀로서 고찰해야만 그 본질적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식민지 사회에서 지방개량의 실천은 일본에서와는 상이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일본이 관제운동과 지방자치의 연합적 형태로서 협치적 거버넌스를 표방하면서 지방개량운동을 전개시켰다면 식민권력은 ‘지방개량’의 구체적 성과보다는 홍보와 선전에 치중하고 식민통치의 정당성과 성과를 과시하는 지방선전통치의 일환으로 이를 이용하였다. 또, 일제는 ‘지방개량’을 홍보하면서도 내지에서 사용된 ‘지방개량운동’이라는 명칭은 전면에 드러내지 않았는데 일본의 ‘지방개량사업’과 ‘지방개량운동’의 전개와 비교할 때 드러나는 가장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식민권력이 지방개량을 실체성 있는 사업으로서 추진했다기보다는 식민지 행정의 일원적 효능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일종의 선전통치 효과에 주목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식민지 공민교육의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공민교육 관련 기존연구들을 검토하여 공민교육의 형성과정을 분석하였다. 지방개량 차원에서 고려되던 공민교육은 1920년대 들어서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공민과(公民 科)’라는 교과서가 체계적인 지식체계로서 본격적으로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공민의 범주도 지방자치적 공민개념에서 입헌적 공민 그리고 제국의 공민으로 확장되어 나갔다. 이는 정세변화와 관련된 제국 통치 양식의 변화 및 성원권에 대한 통치권력의 변화된 입장을 드러내준다. 공민교육의 등장은 제국 통합을 위한 성원권의 부여 및 호명과, 사상문제에 대한 대응, 식민지에서 동원이 필요해진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식민지 공민교육의 형성과 관련하여서는 1920년대 농촌순회강좌 등에서 공민과가 교수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신문기사에 소개된 공민교육의 구체적 사례를 중심으로 식민지 공민강습소, 강습회, 농한기 강습, 식민지 공민 학교, 청년훈련소 등의 구체적 운영방식과 성격을 분석 제시하였다. 192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는 본격적으로 식민지 사회교육의 형태로서의 공민교육이 고려 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관련한 학술장 및 담론장은 협소하였고 공민교육 시설들도 실질적 운영의 성과를 확인하는 것은 어려웠다.
본고가 주목한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의 공민교육은 중등학교 교과로서 ‘공민과’와 ‘공민교육론’이라는 학술담론의 형태로 조성되었다. 식민지 공민교육은 민개념과 지방통치 그리고 교육의 합치를 기획했다는 점에서 그의의가 있다. 식민지의 공민교육론자들이 강조한 것은 ‘제국신민’과 연관된 공민개념과 지방제도 차별의 표면화와 정당화 그리고 식민주의적 공민도덕담론 이었다는 점도 확인하였다. 아울러 식민지 공민교육론에서 철저하게 은폐된 것은 민족적 정체성이었다는 사실도 중요한 지점이었다.
일제는 ‘공민’ 개념이 갖는 지방자치적 혹은 정치적(민주적) 공민권의 성격을 탈색시키고 일본과의 제도적, 실질적 차이점을 표면화하고 식민주의적 담론으로 이를 정당화시켰다. 정당화의 논리는 식민지 조선과 일본의 사회적 격차를 강조하는 것에 있었다. 관습과 제도, 전통과 현대의 격차로서 이를 정당화 시키는 담론전략을 취했다. 또, 실질적인 공민권을 부여하지 않고 ‘공민적 도야’ 혹은 ‘공민적 훈련’을 통해 이를 수사적으로 해소시키는 전략도 취하 였다. 식민주의적 서사를 전면화하여 사회통치의 전략으로 삼고자 한 것이 일제 식민지 공민교육론의 본질이었다.
주요어 : 지방개량, 공민교육, 일제 식민주의 사회통치, 식민주의, 민개념, 지방통치, 공민과, 공민교과서, 공민학교
학 번 : 2011-3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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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description.abstractIn this study, Jibang-gaeryang(local reform) and Gongmin education are analyzied and reviewed from a historical and sociological perspective regarded as a framework of ‘Colonial Governing Strategy’. It covers from the 1920s to the 1930s. In this period, it was sought that the direction of ‘Colonial Governing Strategy’ needs to be changed due to the March 1st Movement in Korea society while it became social problems that democracy, nationalism and socialism were widely spread after the world warⅠended in the international society. In the same period, Colonial Korea society underwent many problems such as unemployment rate increase, frequent occurrence of economic crisis, ideological problems, tenant farmer problems and wandering of the youth in rural areas under the socio-economical conditions that educational enthusiasm severely pursuing school entrance and entrance exams widely spread. Considering those social problems, Imperial Japan begun to seek to change the way of ‘Colonial Governing Strategy’ and then various policies were transplanted.
It is the issue of 'Jibang-gaeryang(colonial local reform)' and 'Gongmin education' that this study considered as key phenomena or important indicators of ‘Colonial Governing Strategy’. In this study, it is strongly insisted that the essential characteristics of Jibang-gaeryang(colonial local reform) and Gongmin education could be correctly understood only when they are considered as a problematic framework of the Imperial Japan’s ‘Colonial Governing Strategy’, that is to say the constantly maintained governing planning for colonial society.
In colonial society, the practice of Jibang-gaeryang was carried out in a different way from that in Japan. The colonial power focused on public campaign and propaganda of Jibang-gaeryang rather than specific results of 'local reforms' and took advantage of it as part of local propaganda rule showing off the legitimacy and achievements of colonial rule while Japan developed its own Jibang-gaeryang movement advocating cooperative governance as combined forms of bureaucratic movement and local autonomy. It was the Maeil Shinbo (每日申報), an official newspaper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that actively promoted the “Jibang-gaeryang” of the colonial power.
Although the Japanese imperialist promoted 'Jibang-gaeryang', the name of 'Jibang-gaeryang movement' was not revealed to the public. That is the big difference observed when this study compare 'Jibang-gaeryang project' with 'Jibang-gaeryang movement'. It is thought that the colonial power paid attention to a certain kind of propaganda effect for the purpose of increasing the efficacy of the colonial administration rather than promoting local reform as a substantive project.
Regarding the issue of Gongmin education in the colonial society, the process of formation of Gongmin education in Japan was analyzed with careful scrutinies of domestic and foreign studies. In the 1920s Gongmin education which had been considered only as a part of Jibang-gaeryang entered a turning point because of the advent of ‘Gongmin-kwa’-textbook as a systematic knowledge system. The category of Gongmin begun to expand from the concept of local autonomous citizens to constitutional citizens and imperial citizens. This reveals the change in the style of imperial rule related to the changes of political situation and the stance of the ruling power towards the right of membership. The advent of Gongmin education could be explained as reflections of historical changes which were granting membership and calling required for imperial integration, responding to ideological problems and necessities of mobilization in the colonies.
Regarding the formation of colonial civic education, it was verified that Gongmin-textbook was taught in rural enlightenment lectures in the 1920s. And it was also analyzed that specific management methods and characteristic of the colonial Gongmin institutes, lectures, agricultural off-season lectures, colonial Gongmin schools and training schools for the youth on the basis of specific cases of Gongmin education introduced on the newspaper. In the mid-1920s, it was also verified that Gongmin education was being considered as a form of social education.
However, the relevant academic and discourse forums were restricted and it was difficult to verify the tangible results of Gongmin education facilities.
Gongmin education in colonial Korea as the curriculum in the 1930s which this paper focused on had been constructed in the form of academic discourses. This study was also confirmed that what the Gongmin education theorists in the colonial Korea emphasized were the Gongmin concept of 'imperial subjects', the superficialization of discrimination in local institution, the discourse of colonialist social morality and the logic of its justification. In addition, the fact that it was the national and class identity that was thoroughly concealed in the theory of colonial Gongmin education was also an important point.
The Japanese imperialism decolorized the character of local autonomy or political (democratic) civil rights of the concept of 'Gongmin' and surfaced institutional and substantive differences with Japan's and then justified it with colonialist discourse. The logic of justification was to emphasize the social gap between Japan and the colonial society. It took a discourse strategy to justify that as gaps between customs and institutions, tradition and modernity.
In addition, a strategy was taken to rhetorically resolve this issue through 'Gongmin discipline' or 'Gongmin training' without granting actual citizenship rights. It was the essence of the theory of Gongmin education under Japanese imperialism that it was intended to be a strategy of mobilization with the intention of generalizing the colonialist narrative and accepting it.

Key words: Jibang-gaeryang, Gongmin, Gongmin education, colonial local reform, civic education, colonialism, Colonial Governing Strategy

Student Number : 2011-3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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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description.tableofcontents제1장 서론 1
제1절 문제제기 1
제2절 선행연구 검토 4
1. 지방개량과 공민교육에 관한 선행연구 검토 5
1) '지방개량운동'에 관한 선행연구의 해석과 평가 5
2) 지방개량운동과 공민교육의 상관관계를 다룬 연구들 10
3) '공민'과 '공민교육'에 관한 선행연구 검토 12
2. 일제 식민지 지방통치와 교육에 관한 선행연구 17
1) 일제 식민지 지방통치에 관한 연구 17
2) 지방통치와 교육의 상관관계를 다룬 연구 19
3) 식민지 교육정책의 시기별 변화과정을 다룬 연구 23
제3절 연구문제와 연구방법 25
1. 연구문제와 연구방법 25
2. 각 장의 연구주제 및 구성 27
제2장 일제 식민주의 사회통치의 이론적 검토 29
제1절 식민주의에 관한 이론적 검토 29
1. '식민주의'의 독해를 위한 이론적 검토 29
2. 식민주의의 투사(投射) : 식민지 사회와 교육문제 35
제2절 '식민주의 사회통치'의 이론적 자원 41
1. 민개념과 성원권에 관한 개념사적 고찰 43
2. '사회통치'에 관한 예비적 고찰 권력, 헤게모니, 이데올로기 46
1) 푸코의 '권력' 논의를 중심으로 48
2) 알튀세와 그람시의 논의를 중심으로 50
3) 현대교육학자들의 논의들 54
제3절 식민주의 사회통치의 개념화와 구성 58
1. 식민주의 사회통치의 개념화 58
2. '식민주의 사회통치' 분석틀과 조작화 61
제3장 1920년대 식민지 지방개량의 형성과 전개 64
제1절 식민주의 민개념과 지방통치 침투권력의 형성 65
1. 식민주의 민개념 : 제국신민 개념의 성격과 함의 65
2. 지방통치 침투권력의 형성 - 헌병경찰의 지방교육강습활동 70
제2절 지방통치 침투권력의 변화 헌병경찰에서 지방개량으로 86
1. 1920년대 식민지 지방통치의 변화 87
2. 1920년대 식민지 '지방개량'의 형성과 전개 92
3. 1920년대 식민지 '지방개량' 활동 99
제3절. 조선총독부 '지방개량강습회' 분석 106
1. '제1회지방개량강습회' 지방개량강습회강연집 분석 106
2. '제3회지방개량강습회' 지방개량강습회강연집 분석 113
3. '조선총독부제3회지방개량강습회상황'과 '지방개량참고자료' 117
제4장 1930년대 '공민적 훈련'의 사회통치 121
제1절 근대 '공민교육'과 '사회통치'의 형성 121
1. 일본 공민교육의 형성과 성격 122
2. 1930년대 문부성 공민과(公民科)와 공민교육 124
제2절 식민지 조선 공민교육의 전개와 성격 132
1. 1920년대 식민지 조선 공민교육의 형태들 132
1) 식민지 조선의 '공민교육강습'과 '공민교육강습회' 133
2) 식민지 공민교육과 공민학교 138
3) 청년훈련소의 공민교육 142
제3절 식민지 중등학교 공민과 설치와 공민교육론의 형성 146
1. 1930년대 식민지 중등학교 공민과의 성립 146
2. '중등교육의 공민화' 논제에 관하여 151
3. 식민지 조선의 공민교육론과 공민교육론자들 155
4. 공민과 편수관의 공민교육론과 식민지 공민교과서 168
제4절 중일전쟁 후 공민교육의 향방 181
1. 식민주의 민개념 : '황국신민'과 '황도공민' 181
2. 전시총동원하 일본 '공민'개념과 '공민교육'의 변화 185
3. 식민지 공민교과서의 변화 1943년 '中等公民 女子用 下' 분석 189
제5장 결론 193
1. 연구 결과 요약 193
2. 연구의 의의와 한계 196
참 고 문 헌 199
Abstract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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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format.extentVII, 214-
dc.language.isokor-
dc.publisher서울대학교 대학원-
dc.subject지방개량-
dc.subject공민교육-
dc.subject일제 식민주의 사회통치-
dc.subject식민주의-
dc.subject민개념-
dc.subject지방통치-
dc.subject공민과-
dc.subject공민교과서-
dc.subject공민학교-
dc.subjectJibang-gaeryang-
dc.subjectGongmin-
dc.subjectGongmin education-
dc.subjectcolonial local reform-
dc.subjectcivic education-
dc.subjectcolonialism-
dc.subjectColonial Governing Strategy-
dc.subject.ddc302-
dc.title일제 식민주의 사회통치에 관한 연구-
dc.title.alternativeA Study on Local Reform(Jibang-gaeryang) and Gongmin Education in Colonial Korea from the Perspective of Colonial Governing Strategy-
dc.typeThesis-
dc.typeDissertation-
dc.contributor.AlternativeAuthorKwon, Dong Cook-
dc.contributor.department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
dc.description.degree박사-
dc.date.awarded2021-08-
dc.title.subtitle지방개량과 공민교육을 중심으로-
dc.identifier.uciI804:11032-000000167510-
dc.identifier.holdings000000000046▲000000000053▲000000167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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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Social Sciences (사회과학대학)Dept. of Sociology (사회학과)Theses (Ph.D. / Sc.D._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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